"이젠 불치병 아닌 만성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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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 역사를 보면 첨단의학의 경연장을 보는 듯하다.

에이즈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 11월 미국 UCLA병원에서다. 환자는 32세의 화가로 목구멍이 곰팡이로 감염돼 헐었고 지독한 폐렴에도 감염돼 있었다. 정상적인 면역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겐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증상. 이후 급속도로 확산된 에이즈는 영화배우 록 허드슨을 비롯한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87년 사상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AZT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처럼 빠른 속도로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처음이었다.

96년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데이빗 호에 의해 3∼4종의 약물을 동시에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이 등장했다.

기존 항바이러스 제제에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가 개발한 크릭시반 등 단백분해효소억제제를 혼합한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던 것. 농구선수 매직 존슨을 살린 것도 칵테일 요법이다.

칵테일 요법은 국내에도 도입돼 감염자에게 국가에서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칵테일 요법을 받게 되면 감염된 지 10년 후 나타나는 면역결핍 증상을 억제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혈액 중 바이러스가 자취를 감춰 다른 사람과 성접촉을 가져도 감염시키지 않는다. 정상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하고 비용이 비싸며 오래 사용할 경우 칵테일 요법에도 죽지 않는 내성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칵테일요법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T20이다.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와 미국의 바이오벤처 트라이머리스가 개발한 신약으로 임상시험 결과 칵테일 요법보다 6배나 강력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였다.

T20의 장점은 치료 기전이 완전히 달라 칵테일 요법에서 발생한 내성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데 좋다는 것이다. 단점은 먹는 약이 아니라 매일 두 차례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점. 내년 초 미식품의약국의 공인을 거쳐 시판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바이오벤처 백스젠이 내놓은 예방백신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임상시험 결과 비교적 예방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 이르면 5년 후 시판될 전망이다. 백신의 장점은 치료보다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최근엔 20분 만에 간단한 혈액검사로 에이즈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이 미국에서 허가를 받기도 했다.

서울대의대 내과 오명돈 교수는 "에이즈는 이제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격하됐으며 당뇨처럼 길들이며 살아가는 만성질환의 하나일뿐"이라고 강조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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