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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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뮤지컬 '몽유도원도'(사진)가 막을 올렸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씨의 신작으로 삼국사기에 실린 '도미 설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같은 제목의 최인호씨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진작부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명성황후'에서 그랬듯 윤호진씨는 복선(伏線)과 상징으로 얽힌 복잡한 구조보다는 단선적인 구조를 좋아한다. 1970∼80년대 연극 연출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름을 날린 그가 '복잡한' 구조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 대중을 상대로 한 뮤지컬의 오락적 성격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용이나 구조가 복잡하면 불리하다는 생각 말이다.

단순화의 방법으로 윤씨가 택하는 것은 숱한 장면의 나열인데 '몽유도원도'도 이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개연성 있는 나열이라면 그것이 허물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작품이 한 여인에 빠진 인간의 파국을 보여주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하는 점에서 단순화는 의미있는 연출 방법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장면의 경중이 드러나지 않는, 리듬감 없는 나열은 곧 평면적이며 따분하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몽유도원도'는 그런 위험성이 있다. 일례로 주인공 아랑이 갈대로 얼굴을 자해하는 하이라이트 장면과 여경(개로왕)이 궁녀들과 색을 나누는 사족 같은 장면이 같은 부피로 보여서는 곤란하다.

삼국시대 도미부인 설화를 바탕으로 한 '몽유도원도'는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다. 아랑을 중심으로 펼치는 두 사내(여경과 도미)의 사랑이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비극(혹은 비련)의 극치다.

흥행을 염두에 두어 해피 엔딩을 중히 여기는 서양 뮤지컬에 비해 이런 비극을 형상화하는 창작 뮤지컬의 모험심은 높이 살 만하다. 그 값에 걸맞게 장면과 인물, 나아가 뮤지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이 역동적이며 입체적으로 살아나 그 비극성을 고조시켰다면 작품은 보다 절절한 감동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 것은 박동우의 무대장치였다. 무대에 배를 띄우는 등 우리 무대에 볼 수 없었던 몇몇 시도는 참신했다. 창작 뮤지컬에서 늘 지적되는 기억에 남는 노래의 부재는 여전했다.

음악이 장면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장면 위에 음악을 덧씌우는 식의 제작방식에서 작곡가가 제 목소리를 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왕명을 거역하고 아랑을 놓아주면서 부르는 향실 역 조승룡의 노래는 가뭄 속 단비였다. 다음 달 1일까지 공연은 계속된다.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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