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국채 세일 일본 100년만의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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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빚에 짓눌리는 일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와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 경제 대국 일본이 엄청나게 불어난 나라 빚 문제에 안팎으로 본격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부채의 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국채 판매 사절단을 해외로 파견하는가 하면 심각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소비 위축의 우려에도 불구, 소득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 신문들은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2006년께 774조엔(약 785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엄청난 나라 빚 때문.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50%를 넘어 미국(65%) 등 주요선진국은 물론 OECD국가 평균(7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며 이로 인해 매년 수십조 엔씩 재정적자가 쌓이고 있다.

◆국채 세일 나선 일본 정부=뉴욕 타임스(NYT)는 '해외 투자자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재무성 관료 등 국채 판매 사절단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일본 국채를 팔기 위해 이번 주 런던과 뉴욕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는 지난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전쟁자금을 마련하려 사절단이 해외로 나간 이래 1세기만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국채는 1990년대 초반 거품 붕괴 이후 안전성.수익률이 떨어져 외국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 일본 국채의 4%만 소유하고 있어 10년 전의 절반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이나 독일은 발행 국채의 40% 이상을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본 국채 대부분이 일본 내 은행, 보험사 등 소수에게 편중돼 있는 게 문제. 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 제스퍼 콜은 "채권 소유자들이 편중되면 경기 상황에 따라 일제히 채권을 팔아치워 채권값이 떨어질(금리가 올라갈) 수 있어 금융시스템에 큰 충격을 준다"며 "이를 막아 줄 안정적인 투자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부담에도 세금 올리기로=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빚더미 일본, 경기침체 무릅쓰고 세금 올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로 고심하는 일본 정부가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수주 내에 세제를 개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주요 골자는 1999년부터 시행돼 온 소득세 감면 혜택을 2006년부터 없애기로 한 것. 분석가들은 이 조치로 연소득 1000만엔인 4인 가족의 경우 매년 18만엔의 세금을 더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에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했기 때문에 가계가 실제 느끼는 부담은 더 크다. 메릴린치 증권은 앞으로 3년간 일본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금과 연금은 7조2000억엔 규모로, 이는 일본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2% 정도 떨어뜨릴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세금을 올리려는 것은 갈수록 심화하는 재정적자 때문. 일본은 거품붕괴 이후 소비를 늘리고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재정 적자를 감수해왔다. 그 결과 국가예산은 계속 늘어 80조엔을 넘고 있으나 경기침체로 세금이 계속 줄면서 2004년엔 세수가 41조7000억엔에 그쳤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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