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속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울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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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 민속주를 세계적인 명주 브랜드로 키워내겠습니다."

15일 농림부가 주최한 국제식품박람회에서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조정형(趙鼎衡·61·전주시 덕진구 원동)씨. 그는 호산춘·죽력고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히던 이강주(梨薑酒)의 명맥을 잇는 무형 문화재(6호)겸 명인(9호)이다.

그는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후 삼학·보배소주 등에서 25년간 근무했다. 40대 후반 "우리 몸에 맞는 가장 한국적인 술을 만들어보겠다"며 사표를 내고 향토주를 찾아나섰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술을 찾기 위해 민속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심지어 간첩으로 몰려 곤욕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전국을 돌며 곳곳의 향토주를 맛보고 그중 2백여종은 직접 제조해보기까지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가 가장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강주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는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3백여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이강주의 맥이 끊길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1991년 큰형 집의 창고를 빌려 이강주를 손으로 빚기 시작했다. 주문 소량 생산인데도 연노랑 색깔이 신비롭고 맛·향이 독특해 애주가들 사이에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유명 백화점이 선금을 주고 납품을 제의, 생산을 기계화할 수 있었다. 현재 이강주는 한해 매출이 60억원(수출 40만달러)으로 국내 민속주 중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강주는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으로 배(梨)와 봉동 생강(薑) 등을 주원료로 만든다. 계피·토종꿀 등이 들어가 향과 맛이 그윽하다. 알콜 도수는 25도이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며 '취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술'로 알려져 있다.

趙씨는 이강주 이외의 민속주 보존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 술 역사와 제조법, 세시풍속에 맞춰 빚어온 절기주, 술에 얽힌 전설과 신화, 각국의 술에 대한 설명 등을 담은 '다시 찾아야할 우리의 술'이라는 책을 펴냈다.

또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는 누룩틀·도자기·용수 등 요즘 쉽게 구경하기 힘든 술빚는 도구 8백여점을 모은 2백여평 규모의 술 박물관을 지었다. 이 박물관은 내년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趙씨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 스며 들어있는 민속주가 '밀주'라는 오명 속에 더이상 사라지거나 소멸되기 전에 정부가 앞장서 보존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술대학을 설립해 전통의 맥을 잇는 후계자들을 양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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