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금메달리스트의 思父曲 :수영 박민들레|아 …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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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 끝 제주도의 늦가을은 청명하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곳, 두 명의 여고생이 금빛 찬란한 메달을 걸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둘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다 너머 제주도에서 전해온 그녀들의 '사부곡(思父曲)'을 찬찬히 들어보자.

"아빠 얼굴도 몰라요. "

12일 수영 경기가 펼쳐진 제주 실내체육관. 여고부 배영 1백m에서 결승점을 가장 먼저 터치한 박민들레(18·강원체고)는 1위를 확인한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문득 그녀의 큰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날씬한 수영 선수라기보단 역도나 씨름 선수에 어울릴 듯 보였다. 몸무게를 물어봐도 "절대 말해 줄 수 없다"며 눈을 흘겼다. 주위에선 "아무도 민들레의 체중을 정확히 모르지만 75㎏은 넘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전 아버지 얼굴도 기억 못해요. 제 돌 잔칫날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는 강원도 정선 탄광촌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그녀가 태어난 지 꼭 1년이 되던 1985년 4월 12일, 아버지는 "서둘러 갔다올테니 잔치준비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갱에서 낙석 사고가 나는 바람에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갓 스무살을 넘긴 어머니 조금숙(40)씨에겐 어린 두딸과 함께 살아갈 날들이 막막하기만 했다.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배추 장사 등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닮은 탓인지 애들은 운동에 소질을 보였고 어머니는 두 딸을 모두 수영 선수로 키웠다.

조씨는 "이제 막내 민들레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내 할일은 다 한 것 같다. 애들 아버지 볼 면목을 세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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