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인가 야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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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강 2중'의 대선구도를 타개하기 위해 '2중'이 추진하고 있는 단일화작업은 그렇지 않아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2중' 모두 자신으로의 단일화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명분과 의리를 떠나 수시로 통합원칙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1강'과 '2중' 사이에, 또는 '2중' 사이에 있는 철새 성향 정치인들의 저울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학도 소신도 없이 단지 2004년의 총선에 유리한 고지만을 찾아 이해득실을 따지다 보니 여론조사 수치에 따라 수시로 태도를 바꾸는 현상이 나타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단일화작업의 의의나 필요성을 폄하하거나 그들의 진지성을 의심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1강'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2중'의 단일화 만큼 적절하고 강력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후보 단일화가 국민의 여망이자, 민주화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때도 있었기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은 단일화작업이 후보의 정체성 강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때에만 국민적 지지가 있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엄정한 심판을 내렸다고 하는 사실이다.

1963년 대선에서 허정(許政)과 윤보선(尹潽善)의 단일화와 67년 대선에서 유진오(兪鎭午)와 윤보선의 단일화는 비교적 높이 평가되는 것이었다. 군사정권의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 합쳐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실현된 것이었기에, 당시 단일화의 명분으로 내세운 '민정(民政)회복'이라고 하는 정체성은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덕분에 선거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자위를 해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 되는 현상도 있었다.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金泳三)과 김대중(金大中) 두 후보에게 가해졌던 후보 단일화 요구가 그것이다. 당시 군사정권 종식을 위해 양金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했기에 많은 국민들이 이들의 단일화를 요구했으나, 결과는 김영삼과 백기완의 단일화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국민적 여망을 무시한 결과 누가 당선됐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일화 여망을 거절함으로써 이들 두 사람이 자신의 등록상표처럼 내세웠던 '민주화'라는 것이 한낱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국민적 비판에 굴복해 일시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정계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민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와 같이 단일화를 둘러싸고 나타났던 두 개의 상반된 유형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국민들은 정체성이 유사한 후보들끼리의 단일화를 바라고 있으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이뤄진 단일화는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혹하게 비판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2중'이 추진하고 있는 단일화작업 역시 이 잣대에 맞춰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일화의 추진으로 '2중'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약화되는 것인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의 상태로는 정체성의 강화와는 거리가 먼 단일화가 추진되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의 후보와 무엇을 위해 단일화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히 '1강'에 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은 '2중'의 입장에서는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되기 위해 '2중'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여론조사에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의원 영입으로 세를 부풀리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상대방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다음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길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진되는 단일화는 정권욕에서 우러난 야합에 불과해 선거가 끝난 후 정계은퇴의 압력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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