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 와중에 … 전경련은 침묵 모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요즘 재계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의 대기업 압박 정책은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데,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전경련이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달 말 제주 하계포럼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한 것이 거의 전부다. 그나마 정부가 불쾌감을 보이자 곧바로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파문 진화에 급급했다.

재계에는 금융위기 극복에 앞장서 온 대기업의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운함이 있다. 당연히 전경련이 이런 사정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 한다. 재계의 불만은 이뿐이 아니다. 대기업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바로잡고, 정부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속시원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전경련이 정말 재계 대표기관이라면 대기업이 상생협력에서 잘한 것은 알리고, 미흡한 점은 보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소통하고 회원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작 전경련은 ‘침묵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납품단가나 중소기업 영역 보호 등이 첨예한 현안으로 떠올랐는데도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점을 구하는 의지나 행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결정 문제와 개선대책’ 포럼을 지난 4일 열기로 했다가 갑자기 연기했다.

전경련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을 만들려고 전경련에 문의했더니 ‘우린 그런 거 절대 안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한 전경련 관계자는 “그간 전경련이 상생 프로그램을 확대 강화하자는 정부 제안에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이런 모습은 일본의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이 최근 지방경제활성화 대책 등을 추진하며 경제상황에 맞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대기업들은 각자도생을 택해 가고 있는 듯하다. 삼성과 현대·기아차가 10일 각각 내놓은 미소금융 확대 방안과 2, 3차 협력업체 지원 방안이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의 존재감이 없다”는 안팎의 지적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