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사람 판단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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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어느 부자가 있었다.

"금년 농사도 대풍이니 많은 곡식을 저장할 큰 창고를 더 만들자. 이제 인생을 아주 즐겁고 안락하게 살아보자. 나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라며 스스로 행복해 했다.

그때 하늘에 계신 분이 이렇게 말했다.

"부자야, 오늘 저녁 내가 네 생명을 거둬 가면 그 큰 재산은 누구의 것이냐?" 라고 물었다.

부자는 그날 저녁에 죽었고, 재산은 아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 아들은 부자와는 생전에 아무 인연도 없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래서 그 재산은 실질적으로 새로 얻은 며느리 것이 되고 말았다. 이는 수천년 동안 내려온 유대인의 물질관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잣대를 물질에 두고 있는 현대인에게 주는 엄한 교훈이자 나의 기본적인 경제관이다. 허튼 곳에 돈 쓰는 것을 삼가고 사치하지 않도록 가족에게 늘 강조하지만 매년 생활비를 인상할 때가 되면 집사람과 어김없이 실랑이를 벌인다.

내 입장에서는 사원들의 월급 인상률 이상 생활비를 올리는 것은 부담스럽다.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생활비를 더 올리겠다고 약속한 채 늘 한해를 그냥 보낸다. 그래서 서울 강남지역에선 많이 한다는 고액 과외나 아이들에게 옷이나 신발을 명품으로 사주는 게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지금 대학원생인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냥 동네 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씩씩거리며 돌어와선 학원 친구와 싸워서 오늘 저녁에 그 친구의 엄마가 우리집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친구가 자기에게 '신발도, 옷도 싸구려를 입는 거지'라고 해서 한방 먹였는데 코피가 났다는 것이다.또 그 아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 부자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거지들과는 같이 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강남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아이들끼리 편을 가르고 싸우며, 친구 선택도 집이 얼마나 부유한가를 기준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그 아이의 어머니는 우리 집이 무척 가난한 줄 알고 일장 훈시를 준비했던 모양이다. 저녁에 우리 집 앞에 찾아와 아들을 보고 이게 너희 집이냐고 재차 물어본 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물질로 사람의 인격을 평가해선 안된다고 나는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교육하고 있다. 물질은 없으면 불편한 것이지, 그것이 그 사람의 전체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집 경제 교육의 핵심은 올바른 물질관과 이것을 바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와 허세없이 겸손하게 사용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실천할 것을 늘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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