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재단 대통령學.. 성공한 美대통령은 뭔가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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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대통령을 갖는 것은 그 사회의 축복인지 모른다. 한국사회는 지금 벌어지는 대선 레이스 과정 때문에라도 특히 성공한 대통령이 나와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특히 16대 대선이 21세기 한국정치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기에 그런 기대는 간절하다. 대선은 단순히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들어 주기 위한 '국민적 학습 과정'임을 염두에 둘 때 한 권의 책이 성큼 눈에 들어온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The Keys to a Successful Presidency)이 그것인데, 이 책은 미국 보수진영의 싱크탱크에 해당하는 헤리티지재단이 저술했다.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아홉번의 학술회의를 통해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빌 클린턴까지 미 역대 대통령의 치적을 살펴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한 작업의 결과다. 전직 관료, 언론인, 대통령을 연구하는 학자 등 60여명이 논의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여덟개의 분야로 나뉘어 정리됐다.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출신의 캐스퍼 와인버거,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비서실장 레온 파네타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아마도 현재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워싱턴 베테랑'이 아닐까 싶다. 주요 필자들이 집권했던 9대에 이르는 역대 행정부를 포괄하기 때문에 '20세기 미국 국정운영의 윤곽'이 이 책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 다음 여덟가지 분야에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정권인수 과정이 성공적이어야 한다. 둘째, 백악관 참모의 인선이 중요하다. 셋째, 새 행정부의 핵심 요직에 걸맞은 최적의 인재를 찾아야 한다. 넷째, 대통령 의제와 이들의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다섯째, 세계 운영의 국가안보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여섯째, 의회와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일곱째, 연방 관료기구를 통괄하는 관리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덟째, 대통령의 의제를 국민에게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제목만을 훑어볼 경우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로 책이 꾸며진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면서 하나 하나 전략을 짚어주는 서술방식은 과연 인상적이다. 줄줄 읽어도 좋겠고, 매뉴얼 식으로 정리돼 있어 필요한 항목마다 검색이 용이한 점도 '야전 대통령학'이라 할 만하다. 물론 보수진영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편집한 것이어서 레이건 대통령을 가장 성공한 사례로 드는 것 같은 인상도 없지 않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솔직한 증언으로 꾸며졌다. 즉 남의 집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듣는 것처럼 케네디 대통령부터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측근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때문에 오늘 한국의 대선가도에 있는 후보나 참모들, 나아가서 국민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성공하는 대통령'을 위해 먼저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은 대선 레이스에서 이미 집권 후의 인수과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마치 소방호스에서 쏟아지는 물을 들이켜야 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결정해야 할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선거운동과 정권인수 준비는 동시에 추진돼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이런 충고는 대선 레이스에서 진을 빼는 형국의 한국 상황 속에서 설득력있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의 정치와 통치자의 정치가 다른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듯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도와준 사람들을 검증과정없이 백악관과 내각에 활용하게 되면 통치자는 국정운영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선거에서 도움을 준 사람을 공직에 임명하는 엽관제(spoils system)의 전통을 버리고 전문가를 임용하겠다는 실적제(merit system)의 전통을 세웠다. 당시 가필드 대통령이 엽관제의 폐지를 주장해서 선거운동원에 의해 암살된 것이 실적제의 확립을 촉발시킨 것이다.

끝으로 언론과 의회,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안들을 효과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자칫 독선적이 되기 쉽다. 하지만 국정은 언론과 의회, 그리고 국민과 함께 끌어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힘든 대선 캠페인이 끝나고 나면, 그 전투에서 승리한 노병들은 승리에 따른 행복감과 탈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고, 자신이 지금 성취해낸 것에 비하면 앞으로 벌어질 어떤 일도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 교만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이 들려주는 따금한 충고다. 지금 대선 레이스에 있는 후보나 참모들은 '대선 이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은 그런 준비와 '정치 공부'에 유용한 실마리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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