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예고된'도시락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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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길 게 뻔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부실 도시락 원인을 설명하는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의 짙은 한숨에는 부실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무료급식 확대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급식 확대 논의는 지난해 7월 시작됐다. 당시 학기 중에는 40여만명이, 방학 때는 이 가운데 5만여명만이 무료급식을 받았다. 나머지 35만여명 중 상당수는 방학이 되면 굶는데 이를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무료 급식인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선 동사무소 공무원들은 급식 인원 확대에 반발했다. "도시락 배달망이나 담당인력을 갖추지 않고 대상만 늘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똑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9월 17일 고위 당정회의를 열고 무료 급식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열린 수차례의 회의에서도 문제점이 거듭 지적됐지만 끝내 무시됐다. 부실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밥 굶는 애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당위론에 묻혔다.

무료 급식 대상자를 25만명으로 늘리기로 한 뒤 정부는 숫자 맞추기에만 행정력을 집중했다. 배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일은 여전히 뒷전이었다. 일부 복지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부실 도시락 파문이 터지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예산도 더 배정하고 감독도 강화하지 않겠느냐"는 푸념까지 나오는 건 왜일까.

하여튼 정부는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남은 겨울 방학 동안 배달체계 개선과 단체 급식 확대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올 여름방학에는 급식 체계를 제대로 갖출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실 도시락 파동이 나 문제가 되고 있지만 굶는 아동을 줄이는 게 우선이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공무원이 있다. 자기 아들. 딸이 급식 도시락을 받는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얘기할지 의문이다.

신성식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