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사망'계기수사관행개선목소리]'수사관은으르고검사는어르고'예고된 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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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살인 혐의 피의자 趙모(30)씨 구타 사망 사건으로 검찰 조직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담당 주임검사가 구속되는 사상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대검 감찰부의 조사 결과는 이번 사건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수사관은 물리력으로 기선 제압, 검사는 조사 후 조서 작성'이란 잘못된 수사 관행에서 빚어진 참극이란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의 전근대적인 수사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가혹수사 실태=지난 7월 서울지검이 수사했던 연예계 비리 수사 때도 가혹행위 의혹이 일었다. 당시 일부 매니저들은 잠을 못잔 상태에서 방송사 PD들에 대한 '상납 리스트'를 대라는 추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한 기획사 대표는 금품 제공 장부가 있는 곳을 대라는 추궁과 함께 수사관들로부터 여러 차례 가슴과 얼굴을 구타당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폭력조직 S파 살인사건 수사 역시 검찰의 가혹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대검 감찰부 조사에서 수사관들은 피의자를 검거하면 일단 물리력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곧 이어 검사가 피의자 신문 조서를 받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술 고단자가 대부분인 수사관들은 피의자들의 하반신을 집중적으로 가격하고 수갑을 채운 채 얼차려를 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살인사건과 관련,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朴모(22)씨는 "수사관들로부터 수차례 구타당한 뒤 '유관순 누나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아느냐. 물고문·전기고문 다 당했다'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朴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조사를 받다 도주한 崔모씨가 공범을 대라는 수사관들의 구타와 강압에 못이겨 내 이름을 댄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론 안하는 것처럼 돼 있는 밤샘조사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백 의존이 가혹 수사 불러=가혹행위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자백이 가장 손쉬운 혐의 입증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폭력 등 강력사건의 경우 범죄단체를 구성했는지와 살인이나 폭력 행위를 교사한 주범을 찾기 위해선 관련자의 자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경찰에서의 자백은 임의성을 인정받지 못해 증거능력이 없으나 검찰에서의 자백은 재판에서 증거능력이 있다. 그만큼 검사나 검찰 수사관들이 강압수사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은 검찰이라는 통제장치가 있으나 검찰은 없다.

S파의 살인사건도 홍경령 검사가 숨진 朴모씨의 손에 난 칼자국이 타살 흔적이라고 보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3년이나 끌었다. 결국 범행 입증 수단이 당사자의 자백밖에 없다 보니 S파와 관련된 사람들을 상대로 강압 수사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사건의 실체 발견'도 중요하지만 '적법 절차 준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숙지하는 것이 수사 요원의 필수 자질이 되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영화 변호사는 "자백 위주의 수사 관행을 고치지 않는 한 수사기관은 강압수사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수사 의지와 인권보호라는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소 전 국선변호인 선임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처럼 밀폐된 구조의 조사실 자체가 가혹행위를 은폐·축소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지검 조사실에는 조사 장면을 녹화할 수 있는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있지만 주로 자백하는 장면만 녹화한다.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에 대비해서다. 이번 사건 역시 숨진 趙씨가 15시간 조사받는 동안 CCTV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검찰 내부의 과도한 실적주의도 한 원인이다. 부장검사 등에 대한 인사에서 검거나 사법처리 실적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점·파장=가혹행위로 인한 수사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함은 물론 또 다른 피해자를 낳게 마련이다. 이로 인한 대외적인 위신의 추락도 모두 국가적인 손해라는 지적이다.

김진국 변호사는 "심야 수사와 밀실 수사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나라에서 이런 일은 국가적 망신"이라고 말했다.

조강수·김원배·전진배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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