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0일 세계과학의날]세계 과학頂上회담 5년후 한국서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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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10여년 전 만난 일본 와세다대학의 어느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지 않을 때에는 국가지도자가 스포츠행사를 통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민도가 높아짐에 따라 과학이나 문화 같은 고급 종목을 바탕으로 해야 국민의 진정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당시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직후의 우리나라를 빗대는 말처럼 들렸지만,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그의 진지한 주장에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의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언론에 거의 매일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이나 사찰·달동네·양로원 등을 즐겨 찾는 그들의 행적이 결코 보기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일본인 교수의 말을 생각하곤 한다.

레이건대통령이 선거운동에서 결정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미국 중산층의 마음을 꿰뚫는 공약과 제스처 때문이라고 들었다.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도 의식 있는 많은 국민의 가슴에 파고 들 수 있는 공통의 '그 무엇'은 과연 없을까. 생각해보면 전문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모두 자연계 출신이다. 그들의 의식 속엔 과학이나 혁신의 중요성이 깊이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과 그들 가족·친지·후배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정서와 의식에 점화시킬 수 있는 뚜렷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선거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 나아가서 당선 후의 실천을 통해 나라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5년 후쯤 '세계과학정상회담'을 한국에서 여는 것이다. 그 현실적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백97개 국가대표단 2천여명이 참석한 '세계과학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서 채택된 실천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11월 10일을 '세계과학의 날'로 제정하고 세계 각국이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로 한 터다. 아울러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한 실천 사업안도 유엔총회에 상정이 준비되고 있다.

유엔·유네스코 그리고 부다페스트회의를 주관했던 국제과학협의회(ICSU)등과 긴밀히 협의·추진하면 한국에서 세계과학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어려울 것도 없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평가에서 과학기술분야 종합순위 10위권에 들어간 국가적 신인도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88올림픽과 월드컵대회 등을 통해 '스포츠한국'으로서의 대외적 이미지형성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21세기가 본격적인 과학의 세기임을 생각할 때 '과학한국'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이 국제사회에서 국위선양과 국가이익, 그리고 국민의 자존심 제고를 위해 훨씬 큰 의미가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과학정상회담'개최는 과학한국을 지향하는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의미가 크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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