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예비주자 미묘한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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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지사

‘8·8 개각’ 이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문수 경기지사 간에 묘한 갈등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10일 서울 창성동 정부 종합청사 별관으로 출근하면서 뼈있는 말을 했다. 발언의 골자는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를 정해 놓고 뽑는 시스템과 우리나라는 다르다”였다.

김 후보자의 이날 발언은 하루 전 김문수 지사의 ‘기습적’ 발언에 대한 우회적인 반박이었다. 김 지사는 9일 경기도청 월례조회에서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군지 모른다. 중국에선 지금 세대 지도자는 후진타오, 원자바오이고 다음은 누구라는 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했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김 후보자가 “대한민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를 뽑는, 국민이 평가하고 선택해서 뽑는 시스템과 사회주의는 다르다”고 받아친 것이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는 “김 지사를 비롯해 많은 분이 나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참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단 양측은 공개적인 확전으로 비화되는 걸 피하는 분위기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로, 김 후보자와 같은 뿌리를 뒀다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도 이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지사가 좋은 뜻에서 한 말일 것이다. 김 지사도 총리 하면 잘할 분”이라며 김 후보자와 김 지사 사이에 갈등이 이는 걸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출근 발언이 전해진 뒤 김 지사는 이날 오후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후보자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자신의 발언 내용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문답 내용.

김태호 총리 후보자

-김 후보자가 등장해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가 복잡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후보자가) 자치단체장 출신이니 지방자치에 대해 많이 알지 않겠나. 분권을 위해 애써주기 바란다. 또 젊은 분이니 (국민과) 역동적으로 소통하기 바란다.”

-김 후보자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한국의 시스템이 다르다고 말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중국의 리더십 충원과 교체 과정은 매우 안정돼 있다. 우리는 뽑아놓고 바로 다음날부터 물러나라고 한다. 굉장히 불안정하다. 대통령도 뽑아놓고 몇 달 만에 촛불시위 하면서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느냐. 리더십이 불안하면 절대 선진국으로 갈수 없다.”

‘불안한 리더십’을 강조하는 김 지사의 발언은 김 후보자에 대한 재반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 지사의 발언은 김 후보자에게 예민한 것일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지금까지 중앙 무대에서 활동한 적이 없는 만큼 본격적인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동안 김 지사와 김 후보자의 무대는 달랐다. 59세의 김 지사는 민중당 출신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중앙정치 무대에서 성장해 왔다. 반면 김 후보자는 의원 보좌관 등의 짧은 여의도 생활을 제외하면 10여 년을 지방정치 무대인 경남에서 군수·지사로 지냈다.

두 사람은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놓고 각각 찬성(김 지사), 반대(김 후보자)를 했었다. 각자 지역 이익을 대변하면서 공개적으로 부닥친 적이 있는 것이다. 총리 후보자로 발탁되면서 단숨에 여권 차기 주자의 반열에 오른 김 후보자와 오랫동안 차기의 꿈을 가꿔온 김 지사는 이제 불가피하게 경쟁과 견제를 해야 하는 사이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유시민 후보를 꺾으며 대권 기회를 엿보던 김 지사로선 ‘닮은 꼴’ 경쟁자가 등장했다고 여길 만하다. 두 사람은 지자체장 출신이다. 또 노동운동가(김 지사)와 ‘소장수의 아들’(김 후보자)이란 점에서 둘 다 ‘서민형’이다. 김 지사는 재직 시 개인택시를 직접 몰며 지역주민들과 폭넓게 밀착해온 현장형이다. 김 후보자 역시 경남지역에서 “형님이 800명, 아버님이 1000명”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장밀착형’ 마당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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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대오에 합류한 김 총리 후보자=“할머니 한 분이 유심히 날 보시고는 다가오셨다. 그러고는 우리 딸이 TV를 보면서 ‘저 사람 덧니 빼고는 다 잘생겼네’라고 했다. 사실은 덧니가 매력인데 ㅎㅎ”

김 후보자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다. 그는 6월 30일 트위터에 처음 가입했으나 한동안 이용하지 않다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 글을 띄우기 시작했다. 트위터를 이용해 ‘소통 총리’ 실험에 나선 셈이다.

강민석·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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