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진짜를 향해 … 예능과 다큐 닮아가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장면1: 망망대해의 보트. 남자는 카메라를 피해 돌아서서 볼일을 보고, 여자는 ‘전용 요강’을 들고 뱃전 아래 내려간다. “임마, 노 똑바로 못 저어!” 탐험대장의 호통에 입이 나온 대원이 물새를 보며 소리친다. “아 나도 날고 싶다!”

# 장면2: 링 바닥이 무너지게 상대를 내리꽂는 멤버들. 링과 친해지기 위해 찬 바닥에서 자는 것을 불사한다. 파워슬램·수플렉스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한다. 실제로 이들은 1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무한도전 WM7 프로레슬링 경기’에 나선다.

장면 1과 2, 어느 것이 다큐이고 예능인가. 다큐멘터리와 버라이어티의 경계를 허문 ‘다큐라이어티’ 혹은 ‘버라멘터리’가 줄을 잇는다. 8일 첫 방영한 SBS 3부작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해양대탐험’(이하 ‘대탐험’)은 우수대원에게 1억원 상당의 무인도를 준다.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시키는 파격설정이다. 또 주말 예능은 레슬링(MBC 무한도전)과 합창단(KBS 남자의 자격)·아마추어 야구단(KBS ‘천하무적야구단’)에 도전하는 스타들의 도전기로 채워진다. 주인공이 일반인이냐 연예인이냐 하는 것만 다를 뿐, 비쳐지는 희로애락은 다르지 않다.

무동력 로잉(rowing) 보트 3대에 6명이 나눠 타고 바닷길 1600㎞를 탐사한 ‘대한민국 해양대탐험’. 대원 개개인의 캐릭터를 강조하는 ‘버라이어티 다큐’의 면모를 보인다. [SBS 제공]

◆‘무모한 도전’에 초점 맞춘 다큐=“남녀가 한데서 자게 됐다고 불편해 하면 안돼. 여자가 아니라 동료대원이라고 생각해야지.” 소형 로잉보트에 2인1조를 이뤄 한반도 바닷길을 탐색하는 ‘대탐험’. 실제 방송에서도 대장-대원 간의 내적 갈등, 끼니 해결의 어려움 등 ‘서바이벌’적인 요소가 강조됐다.

SBS는 “연예인보다 캐릭터 강한 일반인 출연자들”이라고 내걸었다. 오디션 과정 등을 조명한 버라이어티도 5부작으로 내보낸다. 지난해 MBC ‘아마존의 눈물’이 제작진의 사투를 오프닝 형태로 홍보한 것과 비슷한 접근이다. 배철호 SBS 제작본부장은 “탐사 다큐라고 해서 BBC 자연다큐만이 모델인 건 아니다”라고 했다.

◆버라이어티의 대단한 도전= 이런 경향은 예능에서 다큐 못지 않은 사실감과 목표 달성이 트렌드인 것과 대비된다. 올 9월 거제합창대회에 참여하는 ‘남자의 자격’ 신원호 PD는 “요즘 시청자들은 과장된 캐릭터·스토리보다는 실제에서 나오는 진짜 도전기에 호응한다”고 말했다. 24시간 촬영하고 단 5분을 건져낼지라도 예능에서 ‘진짜 리얼’을 보길 원한다는 것이다.

‘다큐와 예능의 닮은꼴’은 한국 TV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QTV 이문혁 프로듀서는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쇼가 별도 장르로 정착한 외국과 달리 한국의 리얼버라이어티는 연예인이 주인공”이라며 “우리 시청자들은 오락프로든 다큐든 TV에 나오는 유명인과 동질감을 누리고 싶어한다”고 풀이했다. ‘대탐험’이 대원들의 캐릭터를 강조해서 ‘반(半) 연예인’ 효과를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철호 본부장은 “다큐·예능 장르를 나누기보다 ‘재미 있는 진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시청자의 선택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