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감기(8천원)를 중증 감기(4만2천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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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중구에 사는 鄭모(52)씨는 지난 1월 감기 때문에 동네 C의원에서 한번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C의원은 세번 진료한 것처럼 꾸며 건강보험공단에서 2만원 가량을 더 챙겼다. 같은 감기환자였던 金모(38·여)씨는 이 의원에서 하기도(下氣道·폐에 가까운 깊숙한 기도) 증기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단순 감기에 걸린 金씨를 중증 감기환자로 만들어 비싼 진료를 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역시 단순 감기로 서울 강남구 K이비인후과의원을 찾은 朴모(35·회사원)씨.

그러나 의사가 내린 진단은 궤양성 급성인두염·축농증·급성기관지염·비갑개 비대(코안이 붓는 증세)라는 합병증을 동반한 중증이었다.

결국 朴씨는 주사를 맞고 증기로 목치료도 받은 뒤 하루치 약 다섯 가지를 처방받아 먹어야 했다. 요즘 빈번히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동네의원'들의 부풀리기 진료 사례들이다.

보건복지부가 8월 말부터 한달 남짓 감기환자를 많이 다루는 전국의 내과·소아과·이비인후과 의원 34곳을 표본 실사하면서 적발됐다.

그 중 절반이 넘는 19곳이 이런 식의 뻥튀기 진료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감기를 놓고 의원에 따라 진료비가 8천여원에서 4만2천여원까지 차이가 났다. 환자 부담을 키우고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은 것이다. "

조사를 했던 복지부 관계자의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약물의 오·남용을 막아야 할 의사가 환자에게 오히려 강요를 한다는 데 있다.

복지부는 C의원 등 네 곳을 검찰에 고발하고, 15곳은 업무정지 처분을 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다양한 증세 부풀리기 유형=지난 1월 서울 금천구 S의원을 찾은 감기환자 1백85명 중 1백50여명이 급성세기관지염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기관지 깊은 곳에 염증이 생겨 폐렴으로 번질 수도 있는 중증 감기로, X-레이를 찍어야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X-레이를 찍은 사람은 20명뿐이었다. 1백30명은 단순 감기환자를 과잉 진단한 것이었다.

대부분 환자들은 별것도 아닌 증세이면서도 의사 지시대로 항생제를 먹고 기관지 증기 흡입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서울 송파구 K내과에서 역시 과잉진료를 받았던 감기환자 全모(64·여)씨.

全씨는 "그런 줄도 모르고 8일간 매일 치료를 받고, 매일 항생제 한개와 진해거담제 세개씩을 먹었다"고 어이없어 했다. 복지부 조사 결과 全씨는 두번 정도만 진료를 받으면 되는 증상이었다.

환자의 증세에 관계없이 컴퓨터에서 항생제 버튼을 누르면 바로 급성세기관지염 환자로 분류하는 자동 프로그램을 운영해 진료비를 부풀리는 의원도 적발됐다.

◇늘어나는 주사·항생제 처방=지난해 11월 주사제가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주사제 처방도 늘었다.

시민단체인 건강연대가 지난 8월 서울의 1백31개 동네의원을 조사한 결과 주사제 처방을 권유받은 환자는 63.4%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52.7%였다.

이를 두고 건강연대 측은 "지난 4월 건강보험 수가 인하 후 수입을 벌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일부 의원들의 진료 행태에 대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상궤를 벗어난 의료기관을 집중 관리하고 감기에 대한 표준진료지침을 만들어 의사들이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항생제나 주사제를 과다 처방하는 의료기관을 감시하는 소비자 운동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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