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빌려 자본금·증자대금 납입 등기후 모두 인출… 투자자만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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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은 새로 생기는 법인의 60∼70% 가량이 회사 설립 다음날 바로 자본금이 빠져나가는 '가장납입'을 통해 설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설립된 주로 벤처기업인 '깡통회사'들은 입찰 비리나 어음사기 사건 등 각종 범행에 이용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가장납입 수법은 ▶돈 없이 회사를 설립하고 싶은 사람이 전문 브로커의 소개로 사채업자의 돈을 빌려▶회사 계좌로 넣고▶이를 근거로 회사 설립 등기를 마친 뒤▶바로 다음날 회사 돈을 빼내 사채업자에게 돈을 갚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사채업자를 소개해 주는 브로커에게 약 10만원, 회사 설립을 위해 돈을 넣었다 빼는 과정의 이틀치 이자로 7만∼8만원 정도를 사채업자에게 지불하면 자본금 1억원짜리 회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설립된 상장기업이나 코스닥 등록기업의 경우는 대주주가 유상증자 과정에서 자신의 보유 지분을 늘리기 위해 사채업자의 돈을 빌려 주식 대금을 납입하고 다시 회사돈을 빼돌려 사채업자에게 빚을 갚는 형태로 가장납입이 이뤄진다.

사채업자들은 자금 사정이 어려운 벤처기업 등의 가장납입용으로 돈을 빌려줄 때는 일단 회사로 들어간 증자채권자들에 의해 가압류될 위험에 대비, 대여금 1억원당 하루에 30만∼50만원까지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가장납입이 일어난 벤처기업 등은 대주주의 횡령으로 장부상에 잡힌 돈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게 되며, 증자가 이뤄졌다는 사실만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나중에 큰 손해를 보게 된다.

G&G그룹 회장 이용호씨 등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자본금과 주식 수를 마음대로 늘려 투자를 끌어들이고 이를 토대로 주가조작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사채업자와 가장납입을 통해서였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특히 일부 사채업자들은 은행 직원까지 끌어들여 자신이 증자 대금으로 납입한 돈이 가압류되지 않도록 영업 시작 전에 인출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부 법무사는 기업주와 사채업자를 연결하는 브로커 역할을 맡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원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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