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이우걸
맹인은 사물을 손으로 읽는다
손은 그가 지닌 세계의 창이다
마음이 문을 닫으면
쓸쓸한 오독(誤讀)도 있는,
눈 뜬 우리는
또 얼마나 맹인인가
보고도 만지고도
읽지 못한 세상을
오늘은 뜬구름인 양
하염없이 바라본다
◇시작노트
어수선한 가을이다. 현자라고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우울하다. 아무리 보아도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혼돈스럽고 가파르지만 또 현실은 그나마 나의 존재를 용인하는 시공이기에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그 개선에 힘써야 하리라. 이쯤에 와서 생각해 보면 스스로가 두렵다. 내 삶의 전부를 이 가을에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조에 바쳐진 그 많은 시간들이 공허한 노력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극점의 언어를 향한 몸부림…. 그 삶의 기슭에 서 있는 나는 의미있는 생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가졌을까? 가을은 자의식의 계절이다.
◇약력
▶1946년 경남 창녕생
▶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중앙시조대상·이호우시조문학상·정운시조문학상 등 수상
▶시집 『지금은 누군가 와서』 『빈 배에 앉아』『그대를 보내려고 강가에 나온 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