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엘 시스테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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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빈민아동에게 새 삶을 열어준 사례를 다룬 다큐영화 ‘엘 시스테마’. [진진 제공]

이건 기적에 대한 영화다. 음악에 대한 영화이자 예술교육에 대한 영화이며 사회복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동시에 무엇보다 희망에 대한 영화다.

1975년 베네수엘라, 총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의 허름한 차고. 전과 5범 소년을 비롯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생전 처음 음악을 연주했다. 훗날 세계 음악계가 ‘베네수엘라의 기적’이라고 부른 ‘엘 시스테마’(어린이·청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의 탄생이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교육을 통한 빈민구제 프로젝트다. 길거리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이들의 삶과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이다. 최초의 음악교실은 35년이 흐른 현재 전국 200 곳으로 늘었다. 단원도 30여만 명에 이른다. 마약과 범죄로 유명했던 베네수엘라는 100개 오케스트라가 있는 음악의 나라로 이미지를 바꿨다.

이들의 이야기는 세계 음악계와 언론을 흥분시켰다. 최연소로 LA필 상임 지휘자에 취임한 구스타보 두다멜이 엘 시스테마 출신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두다멜은, 재작년 이렇게 만들어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공연을 가졌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2010 유네스코 대회에서는 예술교육의 미래로 엘 시스테마에 주목했다. 기업 정부 등이 참여하는 한국판 엘 시스테마에 대한 논의도 일어나고 있다.

영화는 그간 엘 시스테마의 여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악기가 부족해 처음 악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종이 악기로 연주하는 ‘종이 오케스트라’나, 아이들의 인터뷰가 뭉클하다. “범죄많은 곳에 살지만 난 음악을 가졌죠. 사람들은 모르죠. 빈민가 출신인데 뭘 알겠냐 하겠죠. 하지만 난 큰 걸음으로 나아갈 거예요. 코끼리처럼!” 한 빈민가 소년의 말이다.

후반부 청각장애아들이 수화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 보는 이의 영혼을 건드리는 명장면이다.

음악은 세상을 구원하는가? 음악은 가난을 없애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가?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음악은 가난한 이들에게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삶을 수긍하는 낙관적 힘을 준다” “선진국의 엄청난 부는 빈민국의 엄청난 가난처럼 비참할 수 있다. 음악으로 마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사회 문제는 배척에서 시작한다. 음악은 배척과 소외의 반대말이다.”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부레우 박사 인터뷰). 이 모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해도 이들이 음악으로 일군 기적에 감동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감독 파울 슈마츠니, 12일 개봉, 전체관람가.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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