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범 절반이 여성… 온몸에 폭약 이슬람 사회에 큰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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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체첸 반군 세력의 대규모 인질 사건의 인질범 약 50명 중 여성이 25명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25일자 러시아 현지 언론들은 "모피 코트 대신 온몸에 폭약을 두른 이들 여성 대원은 오랜 기간 훈련을 받은 듯 능숙하게 인질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슬람 율법은 이교도를 겨냥한 남성의 자폭테러를 순교로 인정하는 것과 달리 여성의 자살은 이유를 막론하고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체첸이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는 원칙에 충실한 전통 이슬람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여성들이 총을 들고 전선에 뛰어든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슬람 사회는 한때 전장에서 남편이나 아들을 잃은 여성에 한해 극히 이례적으로 '지하드(성전·聖戰)'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했다.

1954년 시작된 알제리 독립전쟁을 이끈 알제리 국민해방전선(FLN)에 여성 대원들이 여럿 지원했으며, 60년대 말 '하이잭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게릴라가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에 가담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팔레스타인 의료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이스라엘군의 잔학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며 자폭테러를 한 이후 지금까지 7명의 여성이 자폭테러를 시도, 이슬람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체첸의 여성 인질범들은 이슬람 사회의 비난을 의식한 듯 성명에서 자신들이 '러시아군에 의해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전세계 이슬람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는 "팔레스타인 여성 자폭테러가 체첸의 여성들을 자극했듯 이번 사건은 전세계 이슬람 여성들을 전선으로 끌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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