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연두 회견] 노 대통령 회견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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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18분에 걸친 13일의 연두 기자회견 일문일답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최대한 자극적인 표현을 삼갔다. 신중한 자세와 여유있는 미소를 유지했다. 모두 연설도 네 차례나 독회와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경제 살리기 내용으로 일관하면서 큰 뉴스를 만들어 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들이 회견 도중 이기준 전 부총리의 인사 파문을 거론하면서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 문제를 물어도 과거와는 달리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연설 내용은 대부분 노 대통령이 구술했다고 한다. 일문일답 중간에 노 대통령은 "솔직히 말씀드려 나는 모두 회견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왜냐하면 연두 회견이니까 올해 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기 때문"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였다. 용어 선택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질문을 허용하겠다"고 했다가 곧바로 "질문하시면 제가 답변하도록 하겠다"고 수정했다. 일본 기자가 '천황 방한'을 물어본 대목에선 "일본에선 '천황'이라 부르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불리는 이름인지 확인하지 못해 제가 '일본 왕'이라고 해야 할지, '천황'이라고 해야 할지…"라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런데 '성장.분배 논란'과 한나라당의 4대 법안-경제 법안 연계를 주장하는 대목에서 그만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노 대통령은 "성장이 중요하냐, 분배가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한테 오히려 내가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고 싶다" "지금 잘 되는 국가 중 성장을 소홀히 하는 나라가 어디 있고, 분배를 소홀히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적극적 반론을 펼쳤다.

또 "경제는 경제이고 국보법은 국보법으로, 동시에 할 수 있다" "국정원에서 과거사를 조사한다고 경제가 나빠지느냐" "국회에서 두 가지를 경제법안에 걸고 싸우지만 않았더라면 몇 배나 많은 민생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며 한나라당을 겨냥한 대목에서도 톤이 높아졌다.

27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한 이날 회견에는 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보좌관 등 장관급 3명과 경호실장만 배석했다. 지난해 연두 기자회견 때는 당시 고건 총리를 비롯해 경제.교육부총리 등 부총리급 각료들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배석했었다. 경제도 어려운데다 노 대통령이 과시형 이벤트를 싫어해 배석자를 최소화했다는 전언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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