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삼계탕을 왜 복날에 몰아서 먹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듣고 보니 언론으로선 지당한 일을 했고, 소비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친구의 푸념은 계속됐다. 이때가 되면 삼계탕집과 닭 유통업자들 간엔 닭의 선도를 놓고 전쟁 수준의 신경전이 벌어진단다. 언론이나 고객이 지적하지 않아도 그에겐 이 문제가 최대 현안이었던 것이다.

“평소엔 50그릇 팔기도 어려운데 복날만 되면 1000그릇까지 나간다. 그러니 닭 도축업자들도 미리미리 잡아 냉동시켜뒀다 이때 집중적으로 푸는 바람에 복날 갓 잡은 신선한 닭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야.”

이 친구는 원래 삼계탕집 딸이다. 식당을 열 때 엄마에게 노하우를 전수해달랬더니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하더란다. ‘신선한 닭을 쓰면 저절로 맛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유일한 노하우가 정작 대목인 복날만 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니 열을 받는다는 거다. 한데 소비자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말 그대로 삼복 더위에 줄까지 서가며 겨우 한 그릇 ‘얻어먹는’ 삼계탕이 연중 가장 맛없는 때라니 말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왜 이렇게 복(伏)에만 기를 쓰고 삼계탕을 먹느냐 말이다. 물론 절기(節氣)음식을 즐기던 전통에 따라 여름보양식인 삼계탕을 먹어줘야 건강하게 여름을 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더위보다 냉방병을 걱정하는 시대 아닌가. 산업사회가 되면서 절기는 유명무실해졌는데 어째서 절기음식에 대한 대중의 애착은 집착에 가깝게 증폭되고 있을까.

그럼 삼계탕을 먹지 말라는 말이냐고? 아니다. 삼계탕은 복날에만 몰아먹을 음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생각보다 삼계탕은 저력 있는 음식이다. 2001년 ‘중국경제대장정’ 시리즈를 취재하느라 중국을 한 달여간 떠돌 때였다. 당시 광저우의 한 한국식당 주인에게서 “중국인들이 한국식당을 찾는 이유는 삼계탕을 먹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한 국가대표 셰프는 해외 요리대회에서 수상권에 드는 노하우로 “메뉴에 삼계탕을 넣으면 확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줬다. 유럽인 심판들이 삼계탕을 유독 좋아해 삼계탕엔 늘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삼계탕은 이렇게 세계인들도 알아본다. 그런 음식을 복날 의식을 치러내듯 먹어 치우느라 유통질서까지 왜곡되게 하는 건 왠지 너무 팍팍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내일모레가 말복이다.

양선희 위크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