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바람 계속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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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선이 두달 앞으로 다가왔다. 중앙일보는 12월 19일 실시되는 제16대 대통령선거의 굵직굵직한 변수들을 심도있게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들 변수는 그 향배에 따라 차기 대통령에 누가 당선될 것인지를 가름할 초대형 이슈인 동시에 유권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정치적 쟁점들이기도 하다.

편집자

'정풍(鄭夢準 바람)은 계속 불 것인가. 대선정국의 최대 화두 중 하나다. 그의 지지도 변화에 鄭의원이 이끌고 있는 '국민통합21'은 물론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후보, 민주당과 노무현(盧武鉉)후보 진영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지도는 鄭의원과 '국민통합21'의 최대 동력이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안팎으로 李후보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필마단기의 무소속 의원인 그는 여론조사가 없었더라면 대선출마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풍'이 석달째 불고 있다. 鄭의원의 지지도는 월드컵이 끝난 7월 초순부터 盧후보를 넘어섰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인 9월 초엔 34.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때 李후보를 제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픽 참조>

물론 언론사마다 조사방법과 대상이 조금씩 달라 단순한 수평비교는 적절치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있다. 그는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강세다. 지난 11∼12일 실시한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鄭의원(32.6%)은 李후보(32.8%)와 비슷한 지지율을 보였다. 인천·경기 지역에서 李후보보다 8%포인트, 대전·충청에선 5%포인트 앞섰다. 영남에선 李후보가 일관되게 큰 차이로 1등이고, 호남에선 盧후보가 1위로 집계된 조사결과가 많다.

이와 관련,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동서간 지역대결 구도가 짜여지면 충청권에서 이기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97년 DJP연합이 이회창 후보를 39만표 차로 이길 때 충청권에서의 표차가 정확히 39만표였다. 중앙일보 안부근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충청권 여론은 조사 시점에 따라 기복이 심한데, 지역민심이 그만큼 유동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미있는 대목은 이런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충청권 현역의원들이 鄭의원 쪽으로 옮겨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충청권의 민심이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 쏠릴지 몰라 결심을 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연령별로는 20∼30대에서 鄭의원이 10%포인트 정도 盧후보를 앞선다. 鄭의원이 등장하기 전에 이들 20∼30대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함께 盧후보 지지 중심세력이었다.

40대 지지율의 변화는 바람의 지속성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서 전문가들의 주요 관심사다. 노풍(盧風·노무현 지지바람)이 한창일 때 40대의 盧후보 지지율은 45.7%까지 올라갔었다.(3월 19일 R&R조사) 40대의 지지율이 역전되자(5월 10일 TNS조사) 노풍은 잦아들고 李후보가 盧후보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鄭의원은 40대에서 한번도 李후보를 이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정풍은 한창 때의 노풍보다 약하다"고 했다. 그러나 노풍은 두달 만에 위축된 데 비해 정풍은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다.

鄭의원 측은 정풍의 지속을 자신한다. 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은 "이인제 대세론이 무너지고, 노무현 바람이 사라진 것은 그들이 구정치세력과 쉽게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던 여론조사 전문가 이영작 박사는 鄭의원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지난해 2월과 9월, 차기 대선 후보감에 대한 유권자 심층면접 조사에서 이미 鄭의원이 ▶일자리 창출(경제분야)▶남북문제▶국제·외교감각▶무당파로서의 참신한 이미지 분야에서 이회창·이인제씨보다 앞섰다고 소개했다. 鄭의원의 이런 점이 정풍의 또 다른 자양분이라는 주장이다.

鄭의원은 민주당 일부, 자민련 등과 이른바 '4자 연합 신당'으로 정치적 세(勢)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이미지에 상처를 입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의 이정현 전략기획팀장과 민주당의 정창교 정세분석팀장은 "정기국회가 폐회(11월 5일)하면 정풍도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그 때부터 본격 검증이 시작되고 鄭의원의 자질로서는 이를 감당키 어렵다는 주장이다.

'청와대의 정몽준 지원 의혹'도 鄭후보를 괴롭힐 사안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鄭의원이 세를 얻는다 해도 'DJ지원 의혹'을 견뎌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1997년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 창당과 함께 'YS 2중대론'의 포격을 받고 무너진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반(反)DJ 유권자층이 70%대로 견고하게 형성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반DJ층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회창 후보를 찍을 '친창(親昌·친 이회창)'세력과, 후보들의 행태를 관찰하며 지지후보를 바꿀 수도 있는 '비창(非昌)'세력으로 나눠진다. 친창은 대체로 35∼40%,비창은 30%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鄭의원의 지지층은 비창을 중심축으로 하고 전통적인 DJ지지층 일부가 가세하는 모양으로 구성돼 있다. 그만큼 鄭의원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지며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선거법상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되는 11월 26일까지 鄭의원의 지지도가 유지되면 반창(反昌)성향의 盧후보 지지층이 鄭의원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검증'과 '세 결집'의 이중 벽을 못넘으면 정풍은 마지막 단계에서 거품화할 수 있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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