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詩人이 남긴 풍자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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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애호가들을 위한 멋진 선물이 나왔다. 시집 『악의 꽃』으로 세계 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유일한 단편소설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주인공 사무엘 크라메는 '아름답지만 실패한 작품같은 인물'이다. 고향친구였던 코스멜리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생각은 짧지만 머리는 길게 기르던 시절'에 쓴 자기 시집을 건네는 등 수작을 벌인다. 그러나 부인에게서 도리어 남편을 정부인 무희 라 팡파를로에게서 떼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성공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싶어 덜컥 받아 들인다. 석달간 신문 연극평론을 통해 중상모략한 끝에 라 팡파를로와 맺어지지만 결국은 그녀에게 빠져 동거에 들어간다.

결말은? 시인이 사회주의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에 뜻을 두었다는 소문만 남긴다.

보들레르는 한때 19세게 전반 영국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멋부리기 취향을 받아들여, 물질만능주의에 저항하는 정신적 귀족주의, 댄디이즘(dandyism)-세련된 옷차림에 재치와 오만한 태도를 지닌 우아한 남성멋쟁이 댄디에서 온 말-을 주장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한때 댄디였으나 속물 그 자체인 무희에 빠져 점점 속물이 되어가는 주인공 사무엘을 통해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위선과 부도덕을 비웃고 있다.

잡지에 게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1만2000부나 찍었다니 당시로선 꽤 호평을 받았던 듯하다. 또 이후 십년간 『악의 꽃』을 낼 때까지 보들레르 자신이 대표작으로 꼽았다니 애착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적 잣대로는 평면적 구성에 한가한 이야기여서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단지 매끄러운 번역을 통해 번득이는 묘사를 맛보는 기쁨은 있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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