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를 살리는 긴급 처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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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 단순히 지방의 몇몇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3백55개의 4년제 및 전문대학 가운데 절반이 넘는 지방 사립 대학들이 대학의 존립 자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2003학년도 고등학교 졸업자 수는 61만여명인 데 대학 입학정원은 67만여명이다.

지난해의 경우 입학정원의 50%밖에 채우지 못한 대학이 5∼6개 교나 되며 70%밖에 채우지 못한 대학이 30∼40개에 이른다. 여기에다 4년제 대학만을 따져도 미충원 인원이 27만여명이나 된다.

이런 참혹한 결과의 직접적 원인은 대학을 지원하는 적령 인구의 절대 수가 감소한 데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예측하고도 '대학설립 준칙주의'나 '대학정원 자율화 정책' 등을 통해 대학의 수와 입학정원이 급증한 것이 더 크다. 1990년에 1백24개 였던 4년제 대학이 현재는 1백94개다. 또 1백17개 였던 전문대학은 1백61개다.

당면하고 있는 지방대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 해결책이 나오기 전이라도 현재 사실상 고사(枯死)되고 있는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는 긴급한 처방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 교육의 80%는 사립 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재정 자립도가 열악한 지방 사립 대학에 국공립 대학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하는 것처럼 국고보조금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국공립 대학과는 달리 사립 대학의 재정은 학교법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 대학은 법인이 수익 사업을 할 수 있는 수익용 기본 재산 확보율이 법정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실제 대학에 지원되는 전입금은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학 전체 예산의 2∼3% 정도에 그칠 뿐이다.

80% 이상의 학생들이 이런 상황에서 공부하는 것을 극복하려면 우선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통해 지방 사립 대학 재정의 숨통을 트게 해줘야 한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지방 인재의 위기며 이는 나라의 위기다. 때문에 시급히 지방 대학 육성 특별법안을 입법화해야 한다. 특히 인재 지역할당제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대학입시를 통해 매년 6만여명의 우수한 지역 인재들이 서울로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그 결과 국가에서 실시하는 각종 국가고시나 자격시험 등이 서울 소재 대학 출신자들의 독무대가 되는 것은 뻔한 이치며 이는 결국 지방을 죽이는 일이다.

공공기관이나 정부 투자기관 등에서 인력 채용시 인구비례로 일정 비율을 지방 대학 출신자에게 할당한다면 취업문이 열려 있는 지방 대학에 보다 많은 지역 출신 인재들이 남게될 것이며 지방 대학의 공동화 현상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대학 스스로도 편협한 학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시대적 요구에 눈을 돌리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단순히 학과 명칭을 바꾸는 식의 겉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교육 수요자의 요구와 국가 발전의 방향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특성화와 내실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부와 사회가 지방 대학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며 지방이 죽으면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과감한 지원과 처방전을 내놓지 않으면 모두 물거품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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