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은 가라 '입체 학습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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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5면

한솔교육은 지난 9월 '북스북스'를 새로 내놨다. 북스북스는 참 희한하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내놓은 학습지(학습 프로그램)와는 판이하다. 이 회사의 기존 유아 교육 프로그램은 대체로 이랬다. 교구재로 구성된 제품세트를 먼저 판다. 그 후 매달 교육비를 받고 방문교사들이 가, 이 교구재로 가르치는 식이었다. 하지만 북스북스는 이런 학습 방법에서 탈피했다. 이 제품은 카테고리마저 기이하다. 한솔교육은 이를 시스템북이라고 분류한다." 교구재는 분명 아니고 책을 매달 배달해 주지만 잡지는 더더욱 아니어서 고심 끝에 이렇게 규정했다." 홍보팀 한민철씨의 말이다.

시스템북은 전집류와 학습지의 장점만을 채택해 개발한,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놀이형 잡지, 그림 동화책, 놀이형 워크북, 어머니들을 위한 교육정보지 등 학습지가 아니라 책 6권을 달마다 배달해 준다. 북스북스는 그 때문인지 시장반응이 좋다.

평면 학습지는 가라.

학습지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업체 마다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치열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문제가 담긴 종이 학습지를 배달하고 교사가 방문해 문제풀이를 해주는 형태의 평면적인 흑백 학습지는 이제 '20세기 제품'으로 치부된다. 학습지에 교구, 동화책, 복권처럼 스크레치하면서 공부하는 카드, 놀이기구 등이 한데 어울려야 비로소 하나의 학습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됐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업계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대교·교원·웅진·재능교육·한솔교육. 우리나라 유아·초등학생들의 사교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5' 업체다. 이들 업체는 1990년대 시장 확장에 주력했다. 한명의 회원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회원 수가 곧 사세를 반영했다.

그러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신규 시장진입업체도 급증하자 기존상품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단순히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 매출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갖게 됐다. 외국 상품의 수입도 위협요인이 됐다.

이에 따라 학습지 업계는 올 들어 다투어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된 새 상품을 개발, 내놓고 있다. 평면학습지에서 탈피, 다양한 입체 학습 프로그램을 출시하고 있다.

'놀이책이야? 한자 책이야?'

재능교육이 지난 5월 내놓은 유아용 한자 학습지 '스스로리틀한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학습지는 한자 공부에 동화를 접목했다. 이재진 팀장은 "기존 학습지가 갖고 있는 평면적 교재가 아니다. 팝업북 형태의 특수 입체형 동화교재를 구현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한자의 획과 쓰는 법, 음과 훈을 가르치는 교재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상품이다. 고급 동화 전집물 수준의 삽화로 디자인됐다. 여기다 코팅이 된 한자카드, 풀칠 해 만드는 공작놀이를 더하고 복권이나 상품권과 같이 긁어내면서 한자를 배울 수 있게 했다.

대교는 눈높이 제품으로 유명하다. 대교의 수학 브랜드는 눈높이수학이다. 대교는 그러나 최근 '사고력 수학'이라는 새 브랜드를 출시했다. 유아와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다. 대교가 이 회사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눈높이 브랜드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사고력 수학은 동화를 통해 수 개념을 배울 수 있게 했다. 혹부리 영감 등 전래동화는 물론 창작동화까지 도입하고 있다. 수 공부를 하면서 동화를 통해 창의력도 길러준다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YBM/Sisa는 최근 '호호한자'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책 위의 한자가 적힌 부분을 창문을 열 듯 젖히면 한자의 뜻과 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학습지의 입체화 붐은 또 수요자의 니즈를 맞추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학습지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어린이들은 이제 재미없는 책은 거들떠보려고도 않는다"고 말했다.

조용현

jowas@joins.com

기획·제작=J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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