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풍’이후 박근혜 공개 비판 없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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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는 그동안 사실상 ‘무비판’의 공간에 있었다. ‘박풍’(朴風·박근혜 지지 바람)이 거셌던 2008년 총선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이후 당내에선 공개적인 말을 삼갔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4일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홍준표 최고위원, 김무성 원내대표, 안상수 대표. [뉴시스]

하지만 4일 묘한 일이 생겼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국가지도자 덕목 10개 가운데 7개 정도는 아주 출중하고 훌륭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며 “그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이라고 말했다. <표 참조>

김 원내대표는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다.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이던 2005년 사무총장을 맡은 이래 5년여간 “박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올 초 세종시 문제로 갈라서기 전까진 그랬다. 박 전 대표의 정치에 대해 생각이 많을 법한 사람이란 얘기다.

그래선지 정치권 안팎에선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김 원내대표가 언급한 ‘민주주의’ 대목과 관련, 그동안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박 전 대표 주변의 권위주의적 기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윤여준 전 의원은 “주로 화제에 오르는 게 ‘박 전 대표가 경직돼 있다’ ‘주변에서 말을 못한다’는 얘기들”이라며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건 박 전 대표로서 좋지 않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만나고 싶다고 한 사람은 다 만났고 얘기도 들었다”고 하지만 보이는 이미지는 다른 셈이다. 소통의 깊이 문제도 있다. 박 전 대표와 관련해 선뜻 답하지 못하는 질문 중 하나가 “요즘 누구를 만나고 누구 말을 듣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YS(김영삼)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상도동계엔 김덕룡·김동영·최형우란 동지가 있었는데 박 전 대표에게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유연성 문제는 박 전 대표의 ‘원칙’과 동전의 양면이다. 세종시 수정안 처리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원칙을 강조했고, 관철시켰다. 동시에 유연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얻었다.

김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격인 유정복 의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철학과 가치를 폄하하는 유감스러운 발언”이라며 “박 전 대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원칙을 지키고 대국민 신뢰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고 비판한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이 화합하자는 시점에 당 지도부 인사가 이렇게 말하면 자칫 비방이나 명예훼손으로까지 비칠 수 있다”며 “자기 잣대만으로 다른 정치인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김 원내대표의 발언 중 일리 있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것도 많다”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번 논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강자고, 박 전 대표는 피해자란 이미지가 커서 그동안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 탄압으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차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정애·이가영 기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박근혜 전 대표 관련 발언

“ 국가 지도자 덕목 10개 가운데 7개 정도는 아주 출중하고 훌륭하다. ▶투철한 애국심 ▶엄격한 행동규범 ▶품위 ▶약속을 생명처럼 지키려는 자세 ▶공부하려는 자세 ▶좋은 머리 ▶서민들에 대한 보상심리 등이다. 부족한 점이 감춰져 있는데 그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 등이다. 이걸 고쳐야 한다고 나는 충정에서 말했는데 박 전 대표를 군주처럼 모시려는 못난 사람들은 ‘주군한테 건방지게…’란 식의 반응이다. 거기서 안 알아 주니까 박 전 대표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나의) 의욕이 이제 거의 소진해 버렸다. 현실정치는 뭔가 주고받는 거다. 대통령에게 비주류로서 요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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