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폭탄테러]세계 곳곳 테러…알 카에다 반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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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11 테러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테러리즘이 최근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12일 밤의 발리 참사는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과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힐리가 지난주 아랍권 TV에 방송된 녹음테이프를 통해 공개적으로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직후에 일어난 것이다.

이에 앞서 최근 몇 달 동안 쿠웨이트와 필리핀·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에서 미국 공관 또는 미군을 겨냥한 테러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발리 참사는 '예고된 테러'나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움츠러들었던 알 카에다가 조직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일엔 쿠웨이트에 주둔 중인 미군 해병대가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의 응사로 즉사한 괴한 두명은 알 카에다 조직원인 것으로 미국은 추정했다.

이보다 이틀 전엔 프랑스 유조선 랭부르호가 예멘 연안에서 폭발해 침몰했다. 사건 진상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 역시 알 카에다의 소행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밖에도 지난 2일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미군을 노린 폭탄 테러가 있었고 지난달 23일엔 자카르타의 미 대사관 근처에서 차량이 폭발하는 등 크고 작은 테러가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알 카에다 지도부가 최근 들어 9·11에 이은 2차 테러 공격을 공언하고 나선 가운데 연쇄적으로 이 같은 테러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8일 알 자지라 TV를 통해 방송된 자와힐리의 녹음은 진본이며 이로써 한동안 불분명하던 그의 생존이 확인됐다고 미 정보당국은 분석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알 카에다가 이미 조직 재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 재개에 들어갔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알 카에다의 주력부대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전면 공세를 피해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의 거점을 버리고 파키스탄 국경 지역으로 달아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이후 이들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으나 한동안 미군의 전면 공세를 피해 조직 보전에 주력하다가 올 봄부터 다시 테러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월 튀니지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가 대표적 사례다. 독일인 관광객 등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에 대해 알 카에다의 대변인 술레이만 아부 가이스는 "우리의 작품"이라고 공언했다.

또 6월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미국 영사관 앞에서 자폭 테러가 발생, 14명의 파키스탄인이 숨졌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으로 인해 미 정부는 테러 재발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해 왔다.

10일엔 국무부 성명을 통해 "해외 공관에 대한 테러 계획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고 뉴욕 타임스는 공교롭게도 발리 참사가 일어난 12일자에서 "미국 정부는 대규모 공격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9·11 이후 최대 규모의 테러인 발리 참사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알 카에다(또는 그와 연계된 테러조직)의 반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테러 안전지역으로 여겨져 왔던 휴양지 발리에서 허를 찌르고 일어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지구상의 그 어느 곳도 테러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예영준·채병건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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