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산문으로 풀어 쓴 '여행 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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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살다 보면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의 여행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은 방랑하며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과 그리움을 만나고, 그곳의 바람·파도·개펄·바다, 그리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시를 길어낸다. 산문형태의 여행기지만 그대로 시다.

시인이 찾은 곳은 뱃고동 소리가 요란하고 휘황한 불빛이 밤을 밝히는 커다란 항구가 아니다. 대신 생존의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돌아와 깃드는 포구마을, 어지간한 지도에는 잘 표시되지도 않는 작은 마을을 헤맨다.

파도들의 축제가 눈부신 화진, 옛 이야기 같은 동화마을, 땅의 마음을 아는 지심,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삶의 원칙과 슬픔과 근원의 뼈아픔들을 다 알고 있는" 지세포 등이 그런 곳이다.

"안개처럼 가는 비가 창밖의 바다에 펼쳐지고 있었다. 불빛들이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 봄비들이 아늑하고 포근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는 별빛 같은 것. 가까이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삼천포항에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작은 섬, 늑도의 '초대'를 받고도 당장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시인은 이렇게 읊조린다.

그런가 하면 문득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를 아는 이는 예술가가 아니면 육체노동자"란 깨달음과 만나거나 이쁜 소의 눈빛을 한 갈매기들이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며 기꺼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야"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이 책은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음을 새삼 각인시키는 글로 가득차 있다. 또한 시인이 여행 짬짬이 읽는 시집·소설 이야기도 어우러져 독서 길잡이 구실도 톡톡히 한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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