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개방성·혁신성 앞세운 '창조적 계급'이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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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원제: The Rise of Creative Class)이 비판을 하는 대상은 피터 드러커다. 앞날 경제와 사회발전, 그리고 일과 여가의 전개 양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이 책은 드러커의 '지식 경제 패러다임'을 발전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앞으로 세상의 생산수단이 자본이나 천연자원 혹은 노동 등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에 있음을 역설해 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창하는 것은 '창조적 경제의 패러다임'쪽이다. 지식과 정보는 창조성의 도구 혹은 재료일 뿐이라는 것, 따라서 다양성·개방성·혁신성을 모토로 한 '창조적 자본'의 가치가 미래 사회의 핵심 가치로 이미 떠오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앞날의 변화를 주도할 '창조적 계급'에 대한 강조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는 풍부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지역 경제의 발전과 낙후의 원인을 연구해온 인물. 카네기멜론 대학의 경제개발학 교수로 있는 그는 앞날 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미국 사회에서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나타나고 있는 '창조적 계급'의 성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를 주도한 자본가나 노동자 계급과 달리 창조적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미 미국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성장했으며, 이들은 예술과 대중문화는 물론 미디어와 정부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적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저자는 이 계급에 속하는 주요 직업의 범주를 순수 창조의 핵(예술가·디자이너·음악가 등)과 창조적 전문가 계층(관리직·사업가·고소득 판매직 등)의 두 가지로 나누어 미국 사회의 창조적 계급의 수를 약 3천8백만 명(전 인구의 약 30%)으로 계산해 냈다.

개성이 강한 이들은 개방적이고 경제적 이익보다는 문화적 다양성과 인간적인 삶을 선호한다고 분석된다.

창조적 계급은 경제적 유인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 발전의 3T라고 불리는 기술(Technology)·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고루 갖춘 지역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플로리다 교수는 만일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실리콘 밸리를 모방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의 경제 발전에 미래를 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백년간 유럽의 변두리에 불과했던 아일랜드가 2001년 세계 1위의 패키지 소프트웨어 수출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바로 이 경제 발전의 3T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세금 우대 등을 통해 창조적 인재를 유치했고, 더블린의 템플바(술집과 카페가 밀집된 거리)와 기네스(흑맥주)·제임스 조이스 등 자국이 보유한 문화유산을 활용해 기술과 인재·관용을 환상적으로 통합시켰기에 창조적 계급이 집중돼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은 과거 미래학자들의 지식 경제나 정보사회에 대한 연구와 주장들과 달리 1950년대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변화 모습을 광범위하게 수집된 통계자료와 인터뷰, 그리고 포커스 그룹의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창조적 계급이 집중돼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빠져나가 침체된 지역을 비교분석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홍성걸(국민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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