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놔두고 집값 해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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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 월급에 어떻게 사세요?" 시민운동을 하다 보니 자주 받는 질문이다. 비록 같은 시민단체 근무자라 박봉이긴 해도 맞벌이인 덕에 그래도 소득이 2백만원이 넘으니 올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 소득이 2백71만원에 견주어 볼 때 중산층이다. 실제로 주말이면 외식도 하고, 저축도 하고, 부모님께 용돈도 가끔 드리고, 경조사에 체면치레도 하고, 토론회 등 부수입으로 후배들에게 술도 산다. 워낙 수입에 맞춰 사는 게 익숙해서인지 돈이 부족해 불편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제대로 자식노릇을 못할 때 미안하다. 아들 녀석이 커가면서 은근히 장차 교육비를 부담할 일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불편하고 씁쓸할 때가 있다. 2년마다 찾아오는 전세기간 만료 때다. 고양시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2년 전 이사하며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는데 이번에 계약을 갱신하며 또 수천만원의 빚을 져야 했다. 돈에 맞춰 이사하자니, 막 유치원에 들어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아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내집마련은 꿈조차 꾸지 않던 필자가 다음에는 정말 빚을 왕창 내더라고 집을 살까 생각해보며,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하다 환갑이 다 돼 처음으로 장만한 아파트에 입주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어머니의 심정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아파트 값 폭등으로 난리다. 강남의 아파트 값이 1년반 사이에 50%가 올랐다고 한다. 정부는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재산세 과표를 현실화하는 한편 수도권에 강남형 신도시를 개발하는 등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대선후보들도 공급을 늘려 아파트 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공급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지금도 주택 보급률은 98%고, 지방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널려 있다. 울산에 사는 친구는 우리집 전세보증금이면 제법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다며 내려오란다. 한 선배가 몇년 전 춘천에서 살 때 4천6백만원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지금은 4천3백만원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 집 없는 서민들,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남의 부동산 파동은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다.

대표적인 대규모 공급확대 정책이었던 노태우 정부의 수도권 5대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주택 2백만호 건설사업은 집값 안정은커녕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교통문제, 마구잡이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등 후유증도 심각하다. 그런데 또 수도권에 신도시를 짓겠다니. 서울, 그것도 강남에 모든 것이 집중돼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해결책이 없다. 행정수도 이전이든, 중앙부처·국공립대학·공공기관·공기업의 지방이전이든 분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의 고른 발전과 수도권의 교통·환경문제 등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이기도 하다.

집 없는 서민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소외시킨 주택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빚 내가며 전셋집을 전전하는 서민들에게는 강남형 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보다 공공임대주택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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