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질문>해도 너무한 '난장판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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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일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은 대선을 앞둔 선거 운동장으로 변질됐다. 면책 특권이 허용되지 않는 회의장 밖이라면 엄두도 못낼 '아니면 그만이고'식 폭로가 쏟아졌다.

발언자들은 상대를 조금이라도 더 자극하려는 듯 거친 표현들을 쏟아냈다. 사태는 입에 담기 힘든 막말 공방으로 이어졌다.

정부 측에 답을 구하는 진정한 대정부 질문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장관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당내 문제가 복잡한 민주당의 의석은 시작부터 텅텅 비었고, 합쳐봐야 국회 정원의 3분의 1도 안되는 70여명이 될까 말까 한 의원들이 자리를 지켰다.

첫 질문자인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의원이 노벨상 로비 의혹을 언급하면서 "진정한 김대중 선생의 제자라면 청와대에 가서 진상을 밝히라고 제안하라"고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 의석에선 즉각 "저질 발언 하지 마라"(김옥두)는 고함이 터졌다.

최규선(崔圭善)문건을 인용해 노벨상 의혹을 따진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의원의 발언 때는 민주당 의석이 부글부글 끓었다. "코미디하고 있다. 언제부터 최규선 계보가 됐나"(윤철상) "차라리 삼류 소설가로 나가라"(정균환) "공부도 안하는 저질 정치인"(김옥두) "그 자리에서 자폭하라.(잘 보여야 할)이회창 후보도 없는데 그냥 들어와라"(조재환)며 야유를 보냈다. 민주당 의석 어딘가에선 "양아치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재오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그렇죠?"라며 일일이 호응을 구해 민주당 의원들을 흥분시켰다.

민주당 전갑길(全甲吉)의원은 "어디 이회창 후보도 한번 로비해서 노벨상 타보라"며 곧바로 한나라당 李후보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의석에선 "미친× 아니냐"란 욕설이 터져 나왔고, 이는 "너 완전히 돌았다"(백승홍) "김대업이 아닌 全대업이 등장했다. 테이프는 가지고 왔느냐"(이승철) "야 그만 해라 씨×.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안영근)로 이어졌다.

김문수 의원이 "나쁜 ××들. 다 해쳐먹고 누구에게 덮어 씌우나"라고 하자 全의원은 "발광, 발악을 해라"고 맞받아쳤다.

한나라당 李후보 부친의 친일 논란을 제기한 민주당 송석찬(宋錫贊)의원의 발언도 문제가 됐다. 宋의원은 "대권욕에 눈이 멀어 허공에 지팡이를 휘둘러대는 어리석은 광대노릇… 부친 이홍규씨의 창씨 개명한 이름이 마루야마 아키오…일제 잔재의 아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는가…李후보는 투기꾼" 운운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자극했다.

이규택 총무는 "능지처참할 ×"라고 했고, 윤두환 의원은 宋의원의 발언이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를 인용한 것 아니냐며 "간첩 아니야? 간첩이면 잡아야지"라고 말했다. 임인배 의원은 "연어야 연어야 정신 좀 차려라, 공부 좀 해라"며 宋의원을 헐뜯었다. 누군가는 "호로자식"이라고 욕설을 했다. 2000년 말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 때 자민련으로 이적했던 宋의원은 때가 되면 돌아오는 연어에 자신을 빗대며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했었다.

자질을 의심케 하는 말꼬리 잡기와 비야냥도 이어졌다.

宋의원이 제곱미터(㎡)를 '입방미터'로, '공소시효'를 '공지시효'로 잘못 말하자 한나라당 의석에선 "초등학교도 못 나왔느냐"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수준 이하의 발언과 소란이 이어지자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은 "국민들이 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고 제발 품위를 좀 지키라"고 호소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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