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로비 의혹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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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뉴스위크 한국판 보도를 일간지들이 전재(轉載)하면서 비롯된 반발의 저변엔 '노벨상을 로비의 소산'처럼 폄하하는 데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고 본다.

金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진정 국가와 국민의 영예다. 金대통령 개인으로서도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박지원 비서실장이 "명예를 걸고 대처하겠다"며 법률적 대응까지 시사한 데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음직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화를 내기에 앞서 왜 이런 내용이 기사화되고 화제가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청와대의 항변처럼 구속 중인 최규선씨가 작성한 이 문건들은 청와대와 무관한 것일 수 있다. 또 노벨상의 권위나 선정위원회의 엄정심사 전통에 미루어 로비로 수상이 결정되지도 않을 터다. 하지만 작성자 崔씨가 한때 대통령 측근으로 일했고, 문건에서 제시한 방법·수순 등이 상당부분 현실화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게 심각한 대목이다. 당장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4억달러 대북 비밀지원 의혹이 한 예다. 수상 여건 조성을 위해 무리와 뒷거래가 있지 않았느냐는, 특히 이로 인해 당시는 물론 이후의 정책결정이나 국정운영에 왜곡이 없었는가를 국민은 우려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로비 자체를 일절 부인하는 모습도 정상이 아니다. 잘 모르는 외국 인사들에게 업적과 활동내역을 알리는 노력은 당연하며 이런 시도를 폄하할 것이 아님에도 무작정 아니라는 모양새를 취했으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기관이 로비에 동원됐느냐는 것과 함께 흑막이 개재된 '기획로비'가 있었느냐는 부분을 청와대가 말끔히 밝히면 될 일이다. 더 이상 국가명예의 실추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를 정치적 논쟁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청와대의 자세한 경위 설명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번 기회에 4억달러 의혹도 분명히 밝혀 대북관계를 둘러싼 국민적 의구심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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