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인터뷰-허웅 한글학회이사장]"한글날 뭣때문에 만든 건지 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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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9일은 제556주년 한글날이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한 가운데 자리한 한글날이 달력 속에서 빨간색을 잃어버린 지 12년. 공휴일에서 기념일로 격하된 뒤 한글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7일 오후 한 평생을 한글 연구에 바친 허웅(許雄·84·서울대 명예교수)한글학회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 말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는 것은 민족 정신이 희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이 우리 민족 정신의 요체라는 게 그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글 연구의 중심에 서 있는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찌푸린 미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을 위해 한글 단체들이 연합해 여러 모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날의 민족사적인 의의를 행정 당국에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한글날을 이대로 방치합니까. 게다가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국경일이 늘어날 여지가 줄어들어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는 기자가 몇해 전 만났을 때보다 다소 수척해 보였다. 한글전용론과 국한혼용론의 대립 등으로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쓴 탓도 있겠지만 지난해 11월 아내 백금석 여사가 세상을 떠난 데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응접실 옆자리에 쌓여 있는 시집 더미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아 그거요, 아내가 세상을 뜬 뒤부터 시조 형식을 빌려 일기를 적어봤어요."

'먼저 떠난 아내 백금석의 추억으로 쓴, 일곱달 동안의 일기'란 부제가 붙은 『못 잊어 못 잊어서』(샘문화사刊)라는 시조시집이었다. 『국어음운론』『언어학개론』『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등 빛나는 한글 연구서를 다수 쓴 許이사장이지만 이제껏 수필집 한권 내본 적이 없다. 창작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내가 떠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사실은 힘들어요. 그 어려움을 달래려고 시조를 지어봤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제 내면세계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나 봅니다."

며칠 전 출간된 이 시집에는 '한글학자 허웅'이 아닌 '인간 허웅'의 면모가 그대로 투영됐다. 학계의 거목이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간 듯 아내를 잃은 비애와 회한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멀리서 자식 와도/더 멀리서 손녀 와도/밥 한 끼 차릴 수 없어/맨 입으로 보내고 나니/그립고, 그대 생각에/눈물만 머금는다.'('그립고, 그대 생각에' 전문)

"날마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내의 모습과 귓전을 두들기는 그의 목소리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더 붙들어 두고 싶어서 이 글을 적었지요."

올해로 그가 한글학회를 이끈 지 33년째다. 91년간 우리말과 글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한글학회는 주시경(周時經)선생의 주도로 창립됐다. 그 뒤를 이은 최현배(崔鉉培)선생이 타계한 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許이사장이 학회를 맡았다. 그는 "주시경선생이 주춧돌을 놓았고 최현배 선생이 지은 집을 제가 보수했다"고 말했다.

아내의 일이 화제로 나왔을 때와 달리 한글 이야기로 옮아가자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한글이 경시되는 것 같아요. 이러면 안되는데…. 한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어떻게 이 나라에 문화가 제대로 꽃피겠으며 젊은이들의 의식이 올바르게 뿌리 내리겠습니까."

최근 유치원생들도 영어를 배우는 기현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우리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를 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도 한글도 제대로 구사할 수가 없어요. 제가 어릴 때도 한글을 배우기 전에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곤 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나라 발전에 제대로 기여했을까요."

이어 그는 "물론 외국어는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정부도 언어에 대한 수요를 잘 파악해 특정 언어의 전문가를 키워내는 작업을 해야지요. 하지만 국민 전체가 외국어를 배운다고 야단이면 곤란하죠. 영어 교육도 중학교 때 부터 하되 그 전처럼 문법 위주가 아니라 회화 위주가 되고 교사의 질이 높아진다면 영어 교육도 정상화되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국한 혼용론에 대해서도 "우리글만으로 쓰인 글을 아무 불편없이 읽고 있는데 한자를 굳이 섞어 쓸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인터넷에서의 한글 변용이나 남북한 언어 이질화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쓰는 은어는 일종의 변화의 몸부림이라고 했다.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를 경계하는 기성 세대가 있으므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어차피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남북한 언어 이질화는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는 미디어가 있으니 말이죠. 방언 정도로 남지 않겠습니까."

그는 요즘도 매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종로구 신문로 한글회관으로 출근한다. 여전히 회의를 주재하고 학회의 세세한 일까지 챙기는 그는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학회를 어떻게 활성화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지는 정지 그대로가 아니라 후퇴나 다름없다'는 그는 "실천과 학문이란 학회의 두 기둥을 반석 위에 올려 놓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許이사장의 한글에 대한 정열을 대하며 '우리는 얼마나 한글을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본다. 쉽게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글날의 푸대접을 놓고 누군가 그랬다지 않는가. 스스로가 자신을 대접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대접해 줄 것인가라고. 한글날에 한번 곱씹어 볼 말이다.

글=신용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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