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양빈 회계부정 4년간 총수입 21배 뻥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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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홍콩판 엔론 사건'이 터졌다."

홍콩 증시에선 양빈(楊斌)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이 대주주인 화훼 재배·유통업체 어우야(歐亞) 농업의 회계부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증권 당국이 어우야 농업의 '뻥튀기'식 영업실적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데다 이 회사의 회계감사를 아서 앤더슨사가 상장(上場)단계부터 맡았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지난해 파산한 미국의 최대 에너지 유통업체 엔론사의 회계감사를 맡았다가 부실회계·자료파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어우야 사건'은 중국 고위층과의 유착설에다 북·중간 외교마찰 소지 등 정치적인 성격까지 띠고 있어 엔론 스캔들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혹실체 속속 드러나=홍콩 경제일보는 최근 중국 증권감독위원회가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에 보낸 공문을 입수해 '양빈의 6대 범죄혐의'를 공개했다. 문건은 중국 당국이 왜 양빈을 문제삼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참조>

우선 楊장관 소유 사업체들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등록해 놓고 자본금을 제대로 넣지 않은 '깡통 회사'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은 "어우야 계열사는 총 1억6천만달러(약 2천억원)의 자본금 등록을 했으나 실제 납입된 액수는 많지 않다"며 "상업등기를 하기 위한 거짓보고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업실적 부풀리기도 문제가 됐다. 중국 증권당국은 "어우야 농업은 1998년부터 4년간 총 수입이 21억위안(元·약 3천억원)이라고 말하나 세무당국 조사로는 양빈 소유의 개인기업까지 합쳐도 1억위안을 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문건은 또 "회사 자산 중 2억위안의 행방이 묘연하다"며 공금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양빈과 어우야 그룹은 ▶토지용도 불법 변경▶세금 체납(1천4백만위안)과 탈세(33만위안)▶가짜 문건과 보고서 위조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회계법인에도 불똥=양빈과 어우야 그룹의 파행, 특히 분식회계에는 '제3자의 의도적인 협조'가 있다는 게 증권당국의 시각이다. 증권 관계자들은 "회계법인이 눈감아주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아서 앤더슨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7월 19일 어우야 농업은 1.48홍콩달러에 주식을 공모해 홍콩 증시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앤더슨은 지난 4월 어우야 농업의 재무상태·이익·현금 흐름에 대해 '적정의견'이란 보고서를 냈고, 주가는 2.8홍콩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어우야 주식은 현재 0.38홍콩달러까지 폭락했고, 매매정지를 당해 팔기조차 힘든 판이다. 투자자들은 "'난초 주(株)'가 '쓰레기 주'로 전락했다"고 탄식하고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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