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이 없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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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5면

미국 대도시에서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 치아가 듬성듬성한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 지하철 역사나 건물 입구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청소부나 일용직 노동자 중엔 이 없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청년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는 미국에서 치과 치료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외국인으로(한국인으로) 미국에 살면서 병원을 이용할 때 꼭 알아둬야 할 점이 바로 한국과 다른 치과 진료 제도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보험과 치과 치료를 위한 의료보험은 별개로 취급된다.

즉 일반적인 의료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치과 진료를 받으려면 또다시 치과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미국에선 치과 의료보험도 일반 의료보험처럼 민간에 의해 운영된다. 따라서 어느 보험회사에, 얼마의 보험료를 내는지에 따라 혜택범위가 매우 다양한데 이 역시 의료보험만큼 비싸다.

치아 질병은 상당히 괴롭다. 하지만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다 보니 미국인 가운데는 비싼 치과보험은 안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물며 미국에 온 유학생·주재원·연수생 등 몇년 머무르다 갈 외국인들은 상당수가 치과 보험엔 가입하지 않는다. 따로 가입해야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미국 대학에 연수 온 지 두달 만에 치아에 통증이 생겨 치과를 찾은 S교수(37)."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치과 진료 혜택을 못받는다는 사실을 병원에 와서야 알았지만 썩은 이 한 개를 치료하는 일이라 처음엔 별 걱정 안했다"고 들려준다.

하지만 우선 당장 급한 신경치료를 하는 데만 비용이 1천달러(1백20만원)라는 말을 듣고 잠시 귀국 고민까지 해야 했다. 사정상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썩은 이를 치료하고 금으로 봉을 박는 데 3백5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사회에서는 치과 보험 가입자라는 사실이 여간 자랑거리가 아닌 듯 보였다. 2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 엔지니어 남편을 둔 클라라(34).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면서 첫째 지표로 "치과 보험도 들어주는 회사"라는 사실을 꼽는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흑인 청년이 당첨 후 처음 떠오른 생각이 '나도 이제 치과에 갈 수 있게 됐구나'였다는 고백은 미국 치과 진료의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에 사는 교포 중에는 "치과 치료차 고국을 방문한다"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미국에 장기 체류차 떠나는 사람이라면 치과진료는 미리 철저히 받은 후 비행기를 타는 게 바람직하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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