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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보너스'시대의 종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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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을 비롯한 몇몇 아시아 국가가 1960년대 이후 초고속 성장을 구가한 것에 대해 하버드대 제프리 윌리엄슨 교수는 노동인구비율의 증대라는 '인구 보너스의 선물'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노동인구가 고령화돼 다시 비생산인구가 증가하는 고령화 단계를 맞이하면서 경제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역시 유례없이 고령화 속도가 빨라 2026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한국에 경고음을 보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젊은 국가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되면서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성장과 고령화의 쇼크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30년에는 1.7%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2004년에 5%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면서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1%대의 경제성장은 지진과 같은 충격을 던질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고령화 대책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해지는 시기는 10년 후 또는 20년 후일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사태를 지나치게 안이하게 보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랜 기간 고령화 대책을 준비해왔지만 우리는 준비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다른 대책과 달리 정책 효과 발생의 시차가 매우 크며, 상황이 악화하면 그때는 이미 늦다.

그렇다면 고령화에 따른 성장 신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성장동력 대책은 어떻게 마련돼야 할까? 이제까지 성장동력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산업을 만들고 육성할 것인가 하는 산출물(output) 중심 시각에서 논의돼 왔다. 하지만 고령화 지진(agequake)이 가져올 충격을 해소하자면 생산의 투입요소(input), 즉 인력의 공급이란 시각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령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양적 확대를 통한 노동력 확충이 필요하다. 저출산 대책과 더불어 여성.고령.외국 인력을 제2의 인력, 제3의 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육시설의 확충을 통한 육아부담의 감소는 출산 장려와 여성인력의 공급을 가져올 수 있다. 임금피크제와 같은 고령 근로자에 대한 대안적 고용 형태를 통해 노동시장에서 수요를 창출하고 '점진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가교고용(bridge-employment) 시스템이 확보돼야 한다. 또 외국 인력의 경우 필요하다고 해서 당장 수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없다고 해서 당장 내보내기도 어렵다. 따라서 너무 늦기 전에 외국인의 국내 이민에 관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나아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구의 질적 향상을 통해 '인구 보너스'의 종언을 '두뇌 보너스'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 인구의 질적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력으로도 당장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첫째는 인력의 재배치를 통해 주어진 인력을 가장 생산성 있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에서 나아가 산업의 포기와 선택을 하도록 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둘째는 개별 경제주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 기본은 서비스와 물품의 '고객지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급자 측의 기준으로 아무리 좋은 품질이라고 믿어도 고객의 만족을 얻지 못하면 생산성 저하에서 나아가 존재의 이유가 의문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현승 GE 코리아 전무.「늙어가는 대한민국」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