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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얀 앵두’ 4~29일 앙코르 공연

중앙일보

입력


“우지 마라. 꽃이 지민서(지면서) 우는 거 봤나? 괘니 사름(사람)이 우는 기래. 젠세이겉이(바보 같이).” “몸떼이(몸뚱이) 가진 것드른 마카(모두) 설웁제. 마카 설워서 이래 서루 만내(만나) 가지고 찌지구 뽁구 지라(지랄) 발과이(발광) 하는 기래.”

연극 ‘하얀 앵두’(배삼식 작, 김동현 연출)는 극중 곽지복의 대사처럼 ‘누구나 안고 사는 상처’를 이야기 한다. 강원도 영월 산골에 전원주택을 얻어 내려온 반아산은 한물간 작가다. 배우인 아내 하영란은 자신을 추스르는 것조차 버겁던 무명 시절에 딸 지연을 입양했다. 지질학자인 권오평은 연구에 몰두하느라 아내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도 몰랐다. 이웃집 곽 노인은 간첩누명을 쓰고 처자식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하지만 작품은 이러한 상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로 인한 얽히고설킨 갈등도 없다. 오히려 다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인간은 소멸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까닭에 평생 쓰라릴 것 같은 상처도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상처가 날 때마다 아픈 게 또 인간이다. 권오평은 그럴 때 “5억년 된 삼엽충 화석을 5분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5억년이면 100년 사는 인간이 500만 번 살았다 죽었다 한 시간이다. 인간의 삶이란 게 우주적 운명에 비하면 얼마나 짧은지 새삼 되묻게 된다.

그렇다고 덧없어할 일은 아니다. 삼엽충 화석이 수억년의 시간을 돌고 돌아 하영란과 곽 노인의 손으로 옮겨오듯 소멸하는 것들은 ‘흔적’으로 남게 된다. 어쩌면 일상에서의 사소한 몸짓이나 짧은 대화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신을 남기려는 노력일 수 있다. 작품 전반에 걸쳐 그리움과 애틋함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이유다.

지난해 초연한 이 작품은 과학연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어렵지 않다. 작품 속에서 과학은 인간의 삶과 자연, 우주를 철학적으로 조망하게 하는 매개체다. 4~29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전석 3만원.

▶ 문의=02-708-5001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제공="두산"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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