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피는 못속여요" 조성모 銀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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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가수 조성모의 노래 '투 헤븐(천국으로)'은 "괜찮은거니∼"하고 시작한다. 그렇다. 아쉽긴 했지만 괜찮았다. 천국보다 더 멀었던 마지막 1백m를 젖먹던 힘까지 다해 헤치고 피니시 라인에 손을 댄 수영선수 조성모(18·해남고)는 가장 먼저 스탠드의 아버지를 눈으로 찾았다. 방송 해설을 하던 '아시아의 영원한 물개' 아버지 조오련(52)씨는 두팔을 어깨 위로 들어올려 맞잡으며 '잘했다'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수영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남자 자유형 1천5백m. 조성모는 1천4백m 지점까지 1위로 역영했으나 1백m를 남기고 중국의 유쳉에게 역전을 허용, 다 잡은 듯했던 금메달을 놓쳤다. 비록 막판에 색깔은 은빛으로 바뀌었지만 값진 메달이었다. 32년 전 열일곱의 나이로 한국 수영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던 조오련씨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메달은 금4·은1·동1 등 모두 여섯개. 4일 조성모가 따낸 은메달로 일곱번째 무지개가 채워졌다.

조성모의 기록 15분12초32는 자신의 한국 최고기록을 무려 10초60이나 앞당긴 것이다. 종전 아시아 최고기록(15분14초43)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유쳉은 조성모보다 1초33이 더 빨랐다.

조성모는 지난 5월 7일부터 9월 22일까지 멕시코 고산지대에서 전지훈련을 했다.선수촌에 입촌해서는 삭발까지 하며 결의를 다졌다. 조오련씨는 지난해 5월 어머니를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잃은 뒤 적지 않게 방황했던 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호주·미국·일본 등지로 수영 유학을 보냈고,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몸에 좋다는 천연 생수를 매일같이 연습장으로 갖다 날랐다. '부자 메달'은 분명 아버지의 정성과 아들의 노력이 함께 빚어낸 산물이었다.

조성모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조오련의 아들이니까 그 정도는 하겠지'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부담이 컸던 게 사실이다. 아버지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손해가 많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은 어쨌든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70년대의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지금의 나보다 열살 더 많은 나이에 열세시간을 헤엄쳐 대한해협도 건넜다. 내가 딴 메달은 아버지가 이룬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다."

부산=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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