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치욕'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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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눈길을 붙잡는 기사가 있었다. 더 타임스에 실린 영국의 전 총리인 존 메이저(59)와 전 보건장관 에드위너 커리(56)의 4년에 걸친 불륜행각을 기록한 커리의 일기에 관한 것이다. 결혼생활 14년, 12년의 기혼자로 보수당 원내총무와 초선의원 시절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데 둘 다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기도 하거니와, 한쪽은 헤어진 후에도 '사랑이 지속돼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다'는데 다른 쪽은 '일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거기에 4년을 더 보탠 뒤, 그것도 여성이(!) '사회적 고백'을 하고 나선 터라 속사정이 못내 궁금했다. 더구나 메이저의 부인은 수년간 그 사실을 알았고 남편도 용서했다니 일기만 공개되지 않았던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지 않았겠는가.

비밀 들추기의 원인이 '사랑'과 '수치'의 괴리감이라는 분석에서 성관계에 대한 남녀 인식의 차이까지 주위의 사람들과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를 찧다가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메이저의 부인처럼 우리도 남편의 불륜은 '없었던 일'로 했겠지만 두 딸의 어머니인 커리는 십중팔구 남편에 의해 간통죄로 처벌 받고, 지금처럼 재혼해 방송진행자로서 제2의 인생을 누리기는커녕 사회적 몰매가 쏟아져 끝장났을 게 뻔하다.

만약 메이저가 커리에게 결혼을 약속했다면? 남성에게 관대한 우리나라라지만 죄를 피할 수 없다.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가 버티고 있으니까. 특별한 꼼수를 쓰지 않고 단지 혼인할 것만을 빙자했더라도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를 속여 간음했다면 법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촘촘히 엮어 놓은 까닭이다.

사생활 가운데도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라 할 성생활을 도덕이 아닌 형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행한 모든 행위의 주체이며, 특히 성인의 행동은 자의적 결정에 따른 결과라고 믿는 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되지 않는 한 성행위도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긴다.

근래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거나 행사할 수 없었던 권리를 되찾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수세기에 걸쳐 법·제도·관습으로 짓눌려 온 탓에 아직도 미진한 구석이 적지 않지만 여성들의 땀과 눈물의 결집을 통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과연 여성들을 업신여기는 성차별만 존재하는 걸까? 혹시 여성에 대한 과보호는 없을까? 만약 오늘의 현실과 걸맞지 않게 여성을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든다면 그것도 마땅히 거부하는 것이 '참권리'가 아닐까?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야말로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대표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순결의 덕목을 최우선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배움의 기회가 적어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던 시절의 여성들은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유아'나 다름없었다. 순결의 상실이 여성 자신뿐 아니라 가문의 치욕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이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 죽음을 선고받는 것과 같았으므로 철저히 보호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극소수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있으며 순결=결혼=여성의 삶이라는 등식도 깨지고 있다. 게다가 추행·성폭력 등 자신의 의사에 반한 상대의 강제행위를 벌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도 있다.

부부간의 성행위라도 본인의 뜻이 무시되면 강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제 낯설지 않을 정도로 여성들의 성에 대한 주체성은 강해지고 있다. 이 인식의 여세를 몰아 여성들이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라는 낡은 법의 철폐에 앞장 서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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