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사망한 러시아 라마교 고승 "숨질 때 모습 그대로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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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5년 전 사망 당시 모습 그대로 발견된 한 라마교 고승의 시신 때문에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부랴트 공화국이 술렁거리고 있다.

얘기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베리아와 몽골 접경에 위치한 부랴트 지방의 라마교 지도자였던 다시도르조 이티길로프는 75세가 되던 해 "30년 뒤 내 시신을 꺼내 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제자와 신도들 앞에서 숨졌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자세로 입적(入寂)한 그의 시신은 사원 묘소에 안치됐다. 30년 뒤인 57년, 유언대로 무덤을 판 신도들은 죽을 때 모습과 똑같은 자세로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시신을 발견했다.

이를 '성불(成佛)'의 증거로 여긴 신도들은 라마교를 억압해 온 당시 소련 정부가 시신을 빼앗아갈지 모른다며 비밀장소에 다시 매장했다. 성불을 기리는 차원에서 고급 토종나무관을 썼고 관엔 소금을 채웠다.

다시 45년이 지난 지난달 11일, 부랴트의 새 라마교 지도자 빔바 도르지예프가 다시 이티길로프의 신비에 도전했다. 작업에 참여한 승려 10여명은 악취를 걱정해 마스크를 썼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신은 75년 전 숨질 때 모습 그대로였다. 감동한 도르지예프는 시신을 사원에 '모시고' 수도승 1백50여명을 동원해 지키도록 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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