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두 기습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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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틀 전 국군의 날 우리는 두 가지 광경을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봐야 했다. 하나는 한총련 학생들에 의한 미국대사관 난입과 성조기 불태우기 시도이며, 다른 하나는 여대생들의 국방부 정문에 페인트 뿌리기다.

미국대사관 담을 넘어 들어가 기습시위를 벌이며 성조기를 불태우려던 학생들은 의정부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고와 관련해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또 국방부에 몰려가 현판 등에 페인트 세례를 퍼부은 여대생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주장했다. 서로 무관한 사건이지만 공통분모가 없지는 않다.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공공기관을 '공격'한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군사 맹방이요, 제1의 무역 상대국이라는 현실을 제쳐놓더라도 외국의 국기를 불태우는 게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보탬이 될 것인가를 숙고해야 했다.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고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법과 외교력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다. 성조기를 태운다고 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을 더 꼬이게 할 뿐이다.

국군의 날 군의 심장부에 '폭력'을 가한 여대생들의 "군대가 있음으로 해서 전쟁이 발생하므로 병역을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쟁 발발시 일어날 집단적 성폭력 때문에 병역거부를 지지한다는 여대생들의 페인트 세례 역시 또다른 폭력이 아닌가. 군의 존재는 전쟁을 촉발하는 촉매가 아니라 전쟁억지를 위한 방어수단임을 왜 모르는가. 군이 있기에 내 가족, 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한 순진무구함 탓인가. 병역 대신 다른 방식으로 봉사한다는 발상은 일견 그럴듯하다. 병역의무가 없는 여학생의 입장에선 수해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게 더 소중한 일 아니겠는가.

대학생들로선 기존의 질서·사고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평화적·합법적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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