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에겐 너무 먼 수도권 국민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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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건설교통부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2012년까지 시세의 절반 수준에 입주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 1백만가구를 짓겠다고 한다. 이 중 60만가구를 수도권에 건설한다고 하니 돈 없는 서민들로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반 아파트나 주택은 값이 너무 비싸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 이런 값싼 주택을 대량 공급한다는 데야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작 주택난에 허덕이는 대도시, 특히 서울 서민의 주거안정 대책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분명 이번 대책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집 사기가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책으로 내놓은 방안임에 틀림없다. 집값이 너무 올라 살 수가 없다는 얘기지 공급이 모자라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집을 구입하려는 수요는 아직도 엄청나다. 문제는 실수요자가 얼마나 되느냐는 점이다.

그 문제는 서울시 동시분양 아파트 청약자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현재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재테크 차원에서 또 한 채를 분양받으려는 경우가 많고, 설령 실수요자라 해도 직접 거주하기보다 웃돈이 붙은 분양권을 팔아 차익을 챙기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다.

이는 최근에 1순위에서 57.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서울 8차 동시분양 아파트의 실제 계약률이 현저히 떨어진 점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8차분부터 분양권 전매제한 적용을 받아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별로 붙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로열층이 아닌 경우 계약 포기 사태가 벌어졌다.

내 집 구입을 원한다면 이런 미계약분을 사면 될 것 아니냐 하겠지만 분양가가 워낙 비싸 돈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부가 싼값에 입주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고 나섰다지만 누구를 위한 계획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택난이 가장 심각한 계층은 서울 시내에 생활기반을 둔 서민들이다. 이들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에 건설되는 주택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수도권에다 정부 공급계획량의 60%를 짓겠다고 했으나 공급지역이 대부분 도시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서울에서 가깝다는 건립부지가 김포 장기·고양 풍동·남양주 진접·용인 구성·인천 동양·파주 교하 등지로, 이들 지역은 새벽 일찍 나와 밤 12시가 다 돼 귀가해야 하는 도시서민들로서는 손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거리다.

이들은 작은 평형이라도 생활 근거지와 가까운 곳을 원한다. 결국 도시 내 재개발지역이나 재건축 단지에 이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있는 서민주택조차 재건축·재개발의 이름 아래 없어지고 있는 판에 정부가 과연 노른자위 땅에다 국민임대주택을 건설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y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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