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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혼자 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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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두 이런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지라, 일부는 ‘혼자 놀기’를 연마한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혼자 놀기 방법이 있다. 노래 틀어놓고 거울 보며 립싱크, 숨 안 쉬기, 조리퐁 개수 세어보기 등등. 더 찾아보면 수련 매뉴얼도 있다. 1단계가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기다. 식당을 고를 때 붐비지 않고, 읽을 거리가 비치되어 있고, 창가에 혼자 앉을 자리가 있는 곳을 고르라는 것이다. 더 좋은 곳은 혼자 먹는 사람이 이미 한 명이라도 있는 식당이다. 이렇게 혼자 놀기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옆자리에 앉을 친구가 없을까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세상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 외롭지 않은 걸까? 인터넷에는 혼자 놀기의 결과물을 인증샷으로 올려놓은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도 해봤어요”라는 댓글은 동병상련의 목소리로 들린다. 혼자 놀기를 하고 인터넷에 올려 다른 이들의 인증을 받는 과정이 들어가면서 혼자 놀기는 ‘혼자 놀되 같이 놀고 있는 것’으로 변환된다. 물리적 현실은 혼자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다른 이의 시선 아래 놓이면서 같이 있는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훨씬 나은 기분이다. 아이의 놀이 발달 과정에 ‘평행놀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방에서 두 아이가 서로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둘은 서로 잘 놀았다고 한다. 혼자 놀기는 인터넷을 매개로 아이의 평행놀이가 된다.

특히 서로 남기는 댓글은 큰 위안이 된다.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절대고독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인증샷에도 댓글을 달아 기발함을 즐긴다. 나는 이를 ‘감정의 품앗이’라 부른다. 이를 통해 외로움은 잦아들고, 전보다 안정된 상태로 혼자 노는 것에 열중할 수 있다.

나는 ‘놀이’로 풀어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혼자놀이의 세상에서는 혼자 있어 심심할 따름이니, 이제 놀 거리를 찾으면 된다.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이고, 해결책도 노는 것이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혼자 놀기 문화는 현대인의 고립감과 관계의 미숙함으로 인한 아픔을 줄여줄 대안의 하나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