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4>제103화人生은나그네길:38.1970년대와 신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970대 나는 새 음반을 내는 등 신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74년 작곡가 이봉조씨와 '하루라도 못 보면''그리고''겨울나무'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으나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74년의 음반만 해도 대단한 의무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4∼5년 만의 작업이었다.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에 그 소식이 많이 소개됐는데도 반응은 냉랭했다. 왜 외면을 받았을까. 나름대로 그 이유를 떠올려 봤지만 딱부러지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노래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기호 변화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남진·나훈아를 필두로 한 가요의 상업화 바람, 그 반대편에서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부상 등으로 60년대의 '편안한' 음악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가요계는 50년대에서 60년대로 넘어오던 시기의 격변에 비교할 수도 없는 파란이 일고 있었다. 유신 등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도 그런 변화를 초래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가요의 가장 큰 수요층이었던 청년문화에서부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결과 나는 내 시대의 약화를 목도했고,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노래를 새로 만들어 부르기보다 추억 속의 내 노래를 반복하는 데 의미를 두겠다고 결심했다. 이 때문에 70년대의 신곡들은 팬들의 외면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얼마나 실망이 컸으면 지금 멜로디와 가사를 기억하는 곡이 하나도 없을 정도겠는가.

다행히 당시 유행이었던 '극장식당'은 기존의 내 노래를 흡수하는 좋은 시장이었다. 서울 무교동을 양분했던 엠파이어와 월드컵 등이 대표적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쇼를 보는 그런 공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70년대 TV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 '구식 가수'들은 이곳에 출연해 옛날의 팬들과 편안하게 만났다. 요즘 미사리 문화의 원조가 이곳이 아니었나 한다.

나는 이곳의 출연은 물론 이런 공간에 직접 투자도 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노래 부르기에 몰두했다. 74년 청계천에 있던 '아마존'이라는 극장식당에 여러 사람과 함께 돈을 댔다. 내 방식대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몸짓이었다. 더불어 내 노래를 소통할 나만의 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만든 것이 79년에 문을 연 '희준 레스토랑'이다. 지금의 충무로 극동빌딩 지하에 있었던 50석 규모의 공간이었다.

사무실 빌딩에 있었던 터라 점심 시간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저녁에는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런 형편인데도 나는 내 노래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이 레스토랑을 8년 동안이나 지켰다. 곰같은 뚝심이었다.

나는 시간에 구애없이 하루에 두어번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만났다. 김동석(바이올린)·육기술(피아노)·김성천(베이스) 트리오가 연주를 맡았다. 이들의 빼어난 연주로 분위기는 근사했다. 실내 디자인도 당시 일급이었던 민영백씨가 했다.

당초 내가 이 빌딩에 레스토랑을 할 것이라니까 임대해 주는 측에서도 꽤 좋아했다. 빌딩을 지어 새로 분양하면서 입주했는데 계약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그런 인연 때문에 비록 수입이 별로라 해도 가볍게 손을 털고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튼 사람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변화를 순리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길을 도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거부하다가 지리멸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른바 스타였던 사람들의 처세는 특히 극명하게 갈리는데, 나도 70년대 그런 위기가 없지 않았다.

기호의 변화에 민감한 팬들을 보면서 야속한 생각이 든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여러가지를 고려하면서 이를 순리로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었다.

10년 인기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비록 지금 내가 '60년대의 흘러간 가수'로 기억될지라도 당시의 노래를 좋아하는 단 한 사람의 팬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나는 그를 위해 내 노래 부르기를 계속할 것이다.

정리=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