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모리코네'>편안하고 서정적… 모리코네 색다른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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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중년의 남자들에게 엔니오 모리코네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구슬프면서도 냉소적인 음악으로 흔히 기억된다. 시가를 씹어대는 무표정한 얼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인공이라지만 옷차림부터 행동까지 악당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악당들과 어울리며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다가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지켜야 할 마을이나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에 목숨을 걸 생각도 별로 없는 안티 히어로. 정통 서부극을 조롱했던 마카로니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 '석양의 무법자''황야의 무법자'의 배경에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없다는 것은 차마 상상할 수 없다. 기타 반주 위로 낮게 흐르는 휘파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카로니 웨스턴의 황량한 풍경이 떠오른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19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후 수백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수많은 B급 영화와 포르노 영화에까지 손을 댄 탓에 정확한 필모그래피(작품목록)는 누구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민요와 오페라·칸초네에 젖줄을 대고 있는 그의 음악은 친근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는다. 클래식이나 제3 세계의 민요를 빌려오기도 하고 파이프 오르간·오보에·하모니카 같은 독특한 악기나 휘파람과 여성의 스캣 등으로 영화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음악을 창조해냈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미션'의 오보에 연주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아름다우면서도 장중하게 울려퍼지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롤랑 조페의 '미션' 등에서 특히 돋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카페 모리코네(Cafe Morricone)'나 지난 4월의 '러브 모리코네(Love Morricone)'가 선사하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서정성에 치우쳐 있다.

60, 70년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화를 장식했던 곡들을 주로 모았는데, 한결같이 남유럽의 신비롭고도 한가한 정서가 두드러진다. 범죄 스릴러인 '비정의 표적'에 쓰인 '비발디처럼'이나 '귀부인의 금지된 사진'의 테마곡은 듣는 순간 바로 익숙해질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든다. 테렌스 힐 주연의 '무숙자'의 테마곡은 마카로니 웨스턴의 전매특허인 상쾌한 휘파람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사 전체를 아우르고 싶다면 먼저 선택해야 할 음반은 '필름 뮤직(Film Music) 1966~1987'과 '더 베리 베스트 오브 엔니오 모리코네(The Very Best Of Ennio Morricone)'. 조금 더 나아가 편안한 엔니오 모리코네를 만나고 싶다면 당연히 '카페 모리코네'와 '러브 모리코네' 두 장의 음반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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