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음악의 행복한 만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책 자체의 성가(聲價)나 저자의 명성보다 옮긴이가 눈길을 끄는 경우는 정말 희귀하다. 그 책이 음악학과 과학의 만남이란 드문 주제를 다뤘다면 더욱 그렇다.

그간 음악 관련 저술이란 명반 소개위주나 음악가평전 등 읽을 거리와 음악기술을 다룬 전문적 글로 양분되었던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상식을 거부한다. 울산대학교 음악대학장인 채현경씨는 음악인류학을 전공한, 손꼽히는 음악이론가.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교수인 최재천씨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과학자다. 책의 성격에 비춰 볼 때 더 이상의 번역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거기다 부부다.

이들은 결혼 20주년을 맞아 남들처럼 만찬이나 여행 대신 그간 음악과 과학에 대해 나눴던 많은 생각들을 일단 정리해 보기로 하고 좋은 책을 골라 함께 번역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진지한 음악학 책이다. 과학저술가이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저자는 인류학·생물학·철학 등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소리는 잡음이 되고 어느 것은 심금을 울리는 화음이 되는지, 리듬과 비트는 어떻게 다른지, 멜로디와 리듬 중 먼저 생긴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찬찬히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해마나 전두엽 같은 해부학 용어도 나오지만 겁 먹을 건 없다.

주 소재가 서양 고전음악이긴 하지만 노래로 변론을 하는 아프리카 자이르의 전통재판, 한번만 들으면 모든 음악을 완전 흡수하는 정신박약자, 오직 음악을 들을 때만 움직일 수 있는 파킨슨씨병 환자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마련돼 있다.

록 가수의 콘서트장이야말로 진정 '클래식'하다는 주장은 클래식이라면 괜히 주눅이 드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법하다. 19세기 후반까지는 서양의 고전음악회서도 청중들은 먹고 마시며 소리를 지르며 야단이었다니 그런 주장도 일리는 있다.

부부가 토씨 하나를 놓고도 논쟁을 벌일 만큼 공을 들인 이 책은 음악팬들을 위한 멋진 상차림이라 할 만 하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