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쓰나미 이후 아시아의 갈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 참사로 이곳 주민의 생활은 완전히 파괴됐다. 특히 빈곤층이 1차적 피해자다. 그나마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의 경우 심한 피해를 보긴 했어도 전반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인도네시아.스리랑카.태국 등 주요 피해국들은 관광업.어업 분야에서 주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어업 등이 이들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들은 이미 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경제 다양성과 고속 성장에 박차를 가해왔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원래부터 자유주의 체제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유주의 무역을 남이 하나를 얻으면 나는 하나를 잃는 제로섬게임이라고 여겼다. 1820년 전 세계 GDP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이 중 50%가 중국)였다. 그러나 이후 150여년 동안 아시아는 주도권을 빼앗겼다. 1950년 이전에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의 비중은 5% 이하로, 아시아의 비중도 18%로 떨어졌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아시아에서는 경제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19세기에 이어'다시 한번 떠오르는'아시아를 목격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인도는 세계 경제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지렛대를 찾는 중이다. 아시아는 현재 전 세계 GDP의 38%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9세기와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치지만 두 나라는 반드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재가입 이후 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 등 G20 국가들과 연대를 모색함으로써 특유의 결기를 드러냈다.

이렇게 아시아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시장과 국가로서,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과학자와 기술자.기업으로서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이 얼마나 이 새로운 현실에 대처할 준비가 돼있느냐다. 지난해 7월 파이낸셜 타임스에 홍콩 스탠다드 차다드 은행 최고경영자(CEO) 머빈 데이비스는 "선진국들은 아시아의 야심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단지 변화를 실감하는 것과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19세기 아시아의 몰락을 가져왔던 서구 사회의 발전과 대조적으로 아시아의 재부상은 21세기 세계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세심한 준비와 조치.관리가 요구된다. 아시아 인구가 증가세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인구는 향후 15년 안에 현재 14억명에서 17억3000만명으로, 중국은 13억명에서 14억20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국가들이 역동적.개방적인 경제 환경, 즉 성장지향적이면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EU)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TO 등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는 구조나 운영 면에서 철저히 서구 중심적이다. 특히 WTO가 가장 심하다. 이들은 중국.인도 같은 새로운 회원국과 잘해 보려는 생각보다 기존 회원국을 다독거리고 각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른 선진국들의 정부.기업.언론 등도 마찬가지다. 쓰나미 참사는 끔찍했지만 동시에 선진국들에는 아시아를 새롭게 바라볼 기회이기도 하다. 선진국은 이번 남아시아의 참사에 적극 호응했던 것처럼 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판강 중국 국민경제연구소장

정리=기선민 기자
Copyright: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