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슈뢰더에 축전 안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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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독일 총선을 계기로 악화된 미국·독일 관계가 총선이 끝나도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재집권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측이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으나 미국은 여전히 싸늘하다.

선거로 당선된 동맹국 지도자에게 빠짐없이 축하를 전했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아직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 우방 지도자들이 총선 승리 직후 축전을 보낸 것과 대조적이다.

슈뢰더의 패배를 내심 바랐던 미국 측의 불편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축하는커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장관 회담 참석차 바르샤바를 방문 중인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3일 "슈뢰더의 선거운동이 양국 관계에 해를 끼쳤다"며 험담을 했다.

따라서 독일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관계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슈뢰더는 부시를 히틀러에 비유, 물의를 빚었던 헤르타 도이블러그멜린 법무장관을 23일 경질했다.

또 이라크 일방 공격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무제한 연대'라는 표현을 오랜만에 다시 사용, 화해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속 외무장관직을 맡게 된 요슈카 피셔는 한 걸음 더 나갔다. 피셔는 이날 "세계 최고(最古) 민주국가의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한 것은 커다란 일탈행위"라며 도이블러그멜린을 비난하고 "독일이 나치로부터 해방된 것은 미국 덕분이며, 미국 없이는 통일도 불가능했다"며 미국을 위무(慰撫)했다.

따라서 조만간 미국을 방문하게 될 피셔의 '진사(陳謝)외교'가 양국 관계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부시와 슈뢰더가 만나는 11월 프라하 나토 정상회담 전까지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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