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권 최대의 경제대국인 독일이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과 닮은꼴의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독일의 2분기 국내 최종판매(무역과 재고의 성장 기여도를 제외한 국내총생산)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수치는 1993년 경기불황기보다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일본의 국내 최종판매도 0.8%가 줄어 2분기째 하락세를 지속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의 국내 최종판매는 지난 1년간 2%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FT는 독일과 일본은 모두 실질 단기금리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라면서 유로권에 포함된 독일은 금리정책 결정권이 유럽 중앙은행으로 이관됐기 때문에 독자적 금리정책 수행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경우 명목 단기금리가 이미 0% 이하로 떨어진 데다 물가상승률도 마이너스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통화 당국이 금리정책을 운용할 여지가 없어졌다면서 두 나라에서는 거의 유사한 결과로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자국 통화의 강세 현상도 공통점이다. 독일은 유로권의 주요 무역상대국과 환율이 일정하게 고정돼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의 폭이 좁다는 것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설명이다.
일본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어 큰 폭의 평가절하가 불가능한 상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아울러 양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섣불리 막대한 재정자금을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유로권 안정화 협약 하에서 독일 연방정부는 역내 국가보다 재정적자를 더 늘릴 수 없게 돼 있다.
일본도 이미 정부의 재정적자가 대폭 확대된 상태라 추가로 재정 적자를 늘리는 데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양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점도 똑같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10년간 독일과 일본의 실업률은 각각 2.3%포인트와 3.3%포인트씩 상승했지만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실업률은 평균 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양국 노동시장이 비효율적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편 독일과 일본은 향후 40년간 인구 고령화 및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양국 기업들이 투자자금 유치에서 증시 등 시장보다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어 최근 은행권 부실로 신규투자 및 사업 위축이 야기되고 있다는 것도 경기침체 요인이 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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