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사냥 나선 '왕고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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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야들아, 연습할 때 10점 쏘는 것 하고 9점 쏘는 것 하고 어떤 게 어렵노."

"9점요."

"그래, 맞다. 10점은 정조준해서 그냥 쏘면 되지만 9점은 일부러 오조준해야 안되나. 그러니 경기 나가서도 어려운 9점 쏘지 말고 쉬운 10점만 계속 쏘면 1등 할 수 있데이."

부산아시안게임 사격경기가 벌어질 창원종합사격장의 백발백중비(碑) 아래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아직 학생 티가 나는 '아가씨'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10m와 50m 권총에 출전하는 김선일(46)이고, 여자들은 공기소총 대표 서선화(20·군산시청)·김형미(19·갤러리아)·박은경(19·화성시청)이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가운데 사격만큼 연령 분포가 다양한 종목도 드물다.쉰을 바라보는 40대가 네 명이나 있는가 하면, 남자 공기소총의 이우정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일곱살이다.

김선일은 그 중에서도 가장 고참이다. 사격이란 게 특별히 강한 체력을 요구하지는 않는 종목이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국가대표로까지 선발된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선일은 20대 후반에서야 총을 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 화공과를 졸업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는 취미로 시작한 권총 사격에서 자신이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1992년 소피아 국제토너먼트대회 공기권총에서 개인 4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10년이 넘게 국내 정상과 태극 마크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대구백화점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다.

그 세월 속에 철저한 자기 관리가 숨어 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사격하는 동안 친구들이 다 떠나갔어요"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도 절대 두세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시즌 중에는 팔에 부담을 주는 운동이나 일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삿짐도 들지 않는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공기권총 단체 동메달을 따냈던 김선일은 이번 대회에서는 개인·단체 중 한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자 권총 담당인 대표팀 김관용 감독은 "중국의 전력이 워낙 강하긴 하지만 기록이 상승 곡선을 긋고 있고 팀 분위기도 좋아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선일은 대표팀 내 '장로'로서의 역할도 잊지 않고 있다. 군 복무 중인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고 끌어주는 일이다. 특히 세계 정상권인 여자 공기소총 선수들을 딸처럼 아낀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인 만큼 절대 부담 갖지 말고 즐겁게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집착을 내려놓을 나이, 마흔여섯 총잡이의 말이다.

창원=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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